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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7. 28.

서양철학사 3천년의 제1대 사건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 탈레스 / 김인곤



8. 파르메니데스

8. 단편 2. 프로클로스(DK28B2)

자, 이제 내가 말할 터이니, 그대는 이야기(mythos)를 듣고 명심하라,
탐구의 어떤 길들만이 사유를 위해 있는지.
그 중 하나는 있다(estin)라는, 그리고 있지 않을 수 없다 라는 길로서,
페이토(설득)의 길이며(왜냐하면 진리를 따르기 때문에),
[5] 다른 하나는 있지 않다 라는, 그리고 있지 않을 수밖에 없다라는 길로서,
그 길은 전혀 배움이 없는 길이라고 나는 그대에게 지적하는 바이다.
왜냐하면 바로 이 있지 않은 것을
그대는 알게 될 수도 없을 것이고(왜냐하면 실행 가능한 일이 아니니까)
지적할 수도 없을 것이기에.

9. 단편 3. 클레멘스/플로티노스(DK28B3)

... 왜냐하면 같은 것이 사유함을 위해 또 있음을 위해 있기 때문에. (클레멘스 『학설집』VI.23 / 플로티노스 『엔데아데스』 V.1.8)

12. 단편 6. 심플리키오스(DK28B6)

말해지고 사유되기 위한 것은 있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있을 수 있지만, 아무 것도 아닌 것은 그렇지 않으니까. 이것들을 곰곰이 생각해보라고 나는 그대에게 명한다. 왜냐하면 그대를 탐구의 이 길로부터 우선 <내가 제지하는데> 그러나 그 다음으로는 죽어야 하는 자들이 아무 것도 알지 못하면서 [5] 머리가 둘인 채로 헤매는 (왜냐하면 그들의 가슴 속에서 무기력함이 헤매는 누스를 지배하고 있기에) 그 길로부터 [그대를 제지하기에]. 그들은 귀먹고 동시에 눈먼 채로, 어안이 벙벙한 채로, 판가름 못하는 무리로서, 이끌려 다니고 있는데, 그들에게는 있음과 있지 않음이 같은 것으로, 또 같지 않은 것으로 통용되어 왔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모든 것들의 길이 되돌아가는 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 주석』 117)

13. 단편 7. 플라톤 / 섹스투스 엠피리쿠스(DK28B7)

그 이유는 이렇다. 이것, 즉 있지 않은 것들이 있다는 것이 결코 강제되지 않도록 하라. 오히려 그대는 탐구의 이 길로부터 사유를 차단하라. 그리고 습관이 [그대를] 많은 경험을 담은 이 길로 [가도록], 즉 주목하지 못하는 눈과 잡소리 가득한 귀와 혀를 사용하도록 강제하지 [5] 못하게 하라. 다만 나로부터 말해진, 많은 싸움을 담은 테스트를 논변으로 판가름하라. (1-2행: 플라톤 『소피스트』 237a, 258d / 2-6행: 섹스투스 엠피리쿠스 『학자들에 대한 반박』VII. 111)

14. 단편 8. 심플리키오스(DK28B8)

... 길에 관한 이야기가 아직 하나 더 남아 있다, 있다라는. 이 길에 아주 많은 표지들이 있다. 있는 것은 생성되지 않고 소멸되지 않으며, 온전한 한 종류의 것이고 흔들림이 없으며 완결된 것이라는.
[5] 그것은 언젠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있게 될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지금 전부 함께 하나로 연속적인 것으로 있기에. 그것의 어떤 생겨남을 도대체 그대가 찾아낼 것인가? 어떻게 무엇으로부터 그것이 자라난 것인가? 나는 그대가 있지 않은 것으로부터라고 말하는 것도 사유하는 것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있지 않다라는 것은 말할 수도 없고 사유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필요가
[10] 먼저보다는 오히려 나중에 그것이 아무 것도 아닌 것에서 시작해서 자라나도록 강제했겠는가? 따라서 전적으로 있거나 아니면 없거나 해야 한다. 또 확신의 힘은 있지 않은 것으로부터 도대체 어떤 것이 그것 곁에 생겨나도록 허용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것을 위해 디케(정의)는 족쇄를 풀어서 생겨나도록 소멸하도록 허용하지 않았고,
[15] 오히려 꽉 붙들고 있다. 이것들에 관한 판가름은 다음의 것에 달려 있다. 있거나 아니면 있지 않거나이다. 그런데 필연(아낭케)인 바 그대로, 한 길은 사유될 수 없는 이름 없는 길로 내버려두고 (왜냐하면 그것은 참된 길이 아니므로) 다른 한 길은 있고 진짜이도록 허용한다는 판가름이 내려져 있다. 그런데 있는 것이 나중에 있을 수 있겠는가? 또 어떻게 그것이 생겨날 수 있겠는가?
[20] 왜냐하면 생겨났다면 그것은 있지 않고, 언젠가 있게 될 것이라면 역시 있지 않기에. 이런 식으로 생성은 꺼져 없어졌고 소멸은 들리지 않는다. [그것은] 나누어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전체가 균일하기에. 또 여기에 조금도 더 많이 있지도 않고(그런 상태는 그것이 함께 이어져 있지 못하도록 막게 될 것이다), 조금도 더 적게 있지도 않으며, 오히려 전체가 있는 것으로 꽉 차있다.
[25] 이런 방식으로 전체가 연속적이다. 왜냐하면 있는 것이 있는 것에 다가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커다란 속박들의 한계들 안에서 부동(不動)이며 시작이 없으며 그침이 없는 것으로 있다. 왜냐하면 생성과 소멸이 아주 멀리 쫓겨나 떠돌아다니게 되었는데, 참된 확신이 그것들을 밀쳐냈기 때문이다. 같은 것 안에 같은 것이 머물러 있음으로써, 그 자체만으로 놓여 있고
[30] 또 그렇게 확고하게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왜냐하면 강한 아낭케(필연)가 그것을 빙 둘러 에워싸고 있는 한계의 속박들 안에 [그것을] 꽉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있는 것이 미완결이라는 것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결핍된 것이 아니며, 만일 결핍된 것이라면 그것은 모든 것이 결핍된 것일 테니까. 같은 것이 사유되기 위해 있고 또 그것에 의해 사유가 있다.
[35] 왜냐하면 있는 것 없이 ([사유가] 표현된 한에서는 그것에 의존하는데) 그대는 사유함을 찾지 못할 것이기에. 왜냐하면 있는 것 밖에 다른 아무 것도 있거나 있게 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왜냐하면 모이라(운명)가 바로 이것을 온전하고 부동의 것이게끔 속박하였기에 그러하다. 이것에 대해 모든 이름들이 붙여져왔다, 가사자들이 참되다고 확신하고서 놓은 모든 이름들이,
[40] 즉 생겨나고 있음과 소멸되어감, 있음과 있지 않음, 그리고 장소를 바꿈과 밝은 새깔을 맞바꿈 등이. 그러나 맨 바깥에 한계가 있기에, 그것은 완결된 것, 모든 방면으로부터 잘 둥글려진 공의 덩어리와 흡사하며, 중앙으로부터 모든 곳으로 똑 같이 뻗어나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45] 저기보다 여기에서 조금이라도 더 크다든가 조금이라도 더 작다든가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같은 것에 도달하는 것을 막을 만한 있지 않은 것이란 있지 않고, 또한 있는 것은 있는 것 가운데 더 많은 것이 여기에, 그리고 더 적은 것이 저기에 있게 될 길이 없기 때문에. 왜냐하면 그것은 전체가 불가침이기에. 왜냐하면 모든 방면으로부터 자신과 동등한 것으로서, 한계들 안에 균일하게 있기에.
[50] 여기서 나는 그대를 위한 확신할 만한 논변과 사유를 멈춘다. 진리에 관해서, 그리고 이제부터는 가시적인 의견들을 배우라, 내 이야기들의 기만적인 질서를 들으면서. 왜냐하면 그들은 이름 붙이기 위해 두 형태를 마음에 놓았는데, 그것들 가운데 어느 하나도 그래서는 안 된다. 바로 그 점에서 그들은 헤맸던 것이다.
[55] 그리고 그들은 형체에 있어 정반대인 것들을 구분하였고 그것들 서로 간에 구분되게 표지들을 놓았다. 즉 한편에는 에테르에 속하는 타오르는 불을, 부드럽고, 아주 가벼우며, 모든 방면에서 자신과 동일하되, 다른 하나와 동일한 것이 아닌 [불을 놓았다]. 그런가 하면 [그들은] 저것도, 그 자체만으로 정반대인 어두운 밤도, 조밀하고 무거운 형체인 [밤도 놓았다].
[60] 이 배열 전체를 그럴듯한 것으로서 나는 그대에게 설파한다. 도대체 가사자들이 그 어떤 견해도 그대를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1-52행: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 주석』 145-146 /
50-61행: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 주석』 38-39)

27. 콘포드 단편. 플라톤

그런 부동(不動)의 것은, 전체로서 그것에 대한 이름이 ‘있음(to einai)’이다.
( 『테아이테토스』 180e)




         
* 프리드리히 니체, 「그리스 비극 시대의 철학」, 
『니체전집 3.유고(1870~1873년)』, 이진우 옮김, 책세상, 2001.



파르메니데스의 시각은 완전히 달랐다. 그는 성질들을 서로 비교하여, 이들이 모두 같은 종류의 것들이 아니라 두 가지 부류로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예컨대 그가 빛과 어둠을 비교하면, 두 번째 특성은 오직 첫 번째 성질의 부정으로 나타났다. 그는 이렇게 긍정적 성질과 부정적 성질을 구별하려고 했으며, 자연의 전 영역에서 이 대립을 다시 발견하고 명시하려고 진정으로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사용된 그의 방법은 다음과 같았다. 그는 예를 들면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 얇은 것과 두꺼운 것, 능동적인 것과 수동적인 것 같은 몇 가지 대립들을 채택했으며, 이들을 전형적인 대립인 빛과 어둠으로 분류했다. 밝은 것에 상응하는 것은 긍정적인 것이었으며, 어두운 것과 일치하는 것은 부정적인 성질이었다. 예를 들어,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을 선택하면, 가벼운 것은 밝은 것에 해당했고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을 선택하면, 가벼운 것은 밝은 것에 해당했고 무거운 것은 어두운 것의 편에 속했다. 따라서 무거운 것은 그에게는 단지 가벼운 것의 부정에 지나지 않았으며, 가벼운 것은 긍정적 성질이었다. 이러한 방법으로부터 이미 감각의 간섭을 차단하면서 추상적-논리적 절차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산출된다. 무거운 것은 사실 우리의 감각에 긍정적 성질로 와 닿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파르메니데스는 무거운 것을 부정적으로 낙인찍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마찬가지로 흙을 불과 대립시키고, 차가운 것을 따뜻한 것과 대립시키고, 두꺼운 것을 얇은 것과, 여성적인 것을 남성적인 것과 그리고 수동적인 것을 능동적인 것과 대립시켜 이들 모두를 오직 부정의 형식으로만 표시했다. 그래서 그의 시각에서 보면 우리의 경험세계는 두 개의 분리된 영역, 즉 - 밝고 불과 같고 따뜻하고 가볍고 얇고 능동적이고 남성적인 성격을 지닌 - 긍정적 성질들의 영역과 부정적 성질들의 영역으로 나뉜다. 후자의 성질들은 오직 다른 긍정적 성질들이 결여되어 있는 영역을 어둡고, 흙과 같고, 차갑고, 무겁고, 두껍고, 여성적이고 수동적인 성질들로 표현한다. 그는 ‘긍정적’과 ‘부정적’이라는 표현 대신에 ‘존재적’과 ‘비존재적’이라는 확고한 용어를 사용했다. 그는 이와 함께 아낙시만드로스와는 모순되는 명제, 즉 우리의 이 세계는 존재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으며, 또한 비존재적인 것도 포함하고 있다는 공식에 이르렀다. 우리는 존재자를 세계의 밖에서 그리고 우리의 지평 너머에서 찾을 필요가 없다. 우리의 바로 앞에, 도처에 그리고 모든 생성 속에는 존재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으며, 그것은 활동 중이다(396~397쪽).

파르메니데스는 공동으로 작용하는 두 개의 대립을 탐색했다. - 이 대립들의 욕망과 증오는 세계와 생성을 구성하고, 존재자와 비존재자 그리고 긍정적 성질들과 부정적 성질들을 구성한다 - 그리고 그는 갑자기 부정적 성질인 비존재자의 개념에 불신의 눈길을 보내면서도 거기에 매달렸다. 존재하지 않는 것이 도대체 어떻게 하나의 성질일 수 있는가? 또는 더 근본적으로 질문하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가? 우리가 즉시 무조건적인 신뢰를 보낼 수 있고 또 그것을 부정한다는 것은 미친 짓이나 마찬가지인 유일한 인식의 형식은 ‘A는 A다’라는 동어반복(同語反覆, Tautologie)이다. 그런데 바로 이 동어반복적 인식이 그에게 가차 없이 다음과 같이 외친다. “존재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존재한다!”

그는 갑자기 엄청난 논리적 죄악이 자신의 삶을 압박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는 부정적 성질들, 간단히 말해 비존재가 존재한다고, 따라서 공식적으로 표현하면 ‘A≠A’라고 아무 주저 없이 가정하지 않았던가. 그렇지만 이러한 공식을 세운다는 것은 완전히 도착된 사유에 지나지 않는다. [...] 그는 모든 인간 광기의 저편에서 세계의 비밀에 이르는 열쇠, 즉 하나의 원리를 발견했다. 그는 이제 존재에 관한 동어반복적 진리라는 확고하고 가공할 만한 손에 이끌려 사물들의 심연으로 들어간다(401~402쪽. 인용자 강조).

그[파르메니데스]는 이제 경악할 만한 추상적 개념들의 목욕탕에 들어갔다. 진정으로 존재하는 것은 영원한 존재 속에 있어야 한다. 이에 관해서는 ‘그것이 있었다’ 또는 ‘그것은 있을 것이다’라고 서술될 수 없다. 존재자는 생성된 것일 수 없다. 왜냐하면 존재자가 도대체 무엇으로부터 생성될 수 있다는 말인가? 비존재로부터란 말인가? 그렇지만 비존재자는 존재하지 않으며, 아무것도 산출할 수 없다. 존재자로부터란 말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존재자가 자기 자신을 생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소멸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생성처럼, 즉 모든 변화, 증가, 감소와 같이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의 명제가 일반적으로 타당하다. ‘과거에 존재했다’ 또는 ‘미래에 존재할 것이다’라고 서술될 수 있는 모든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존재자에 대해서는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서술될 수 없다. 존재자는 분할될 수 없다. 그것을 분할할 수 있는 제2의 힘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존재자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것이 도대체 어느 곳으로 움직인다는 말인가? 존재자는 무한히 크지도 또 무한히 작지도 않다. 왜냐하면 그것은 완성된 것이며, 완성된 형태로 존재하는 주어진 무한성이란 모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존재자는 제한[한정]되어 있고, 완성되어 있고, 부동(不動)적이고, 마치 하나의 공처럼 어느 곳에서나 균형을 이루고 어느 지점에서나 완성된 형태로 부유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특정한 공간 속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 공간은 두 번째 존재자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수의 존재자들이 존재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들을 분리시키기 위해서는 그 자체의 존재자 형식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존재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는 스스로를 부정하는 하나의 가정이다. 따라서 오직 영원한 통일성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러나 이제 파르메니데스가 예전에는 풍부한 의미의 사상들을 통해 그 실존을 파악하려고 시도했던 생성의 세계로 시선을 돌렸을 때, 그는 자신의 눈이 생성 일반을 보고 있으며 또 자신의 귀가 생성 일반을 듣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이제 그의 명법은 이렇게 말한다. “저 우둔한 눈을 따르지 말라, 메아리처럼 울리기만 하는 저 귀 또는 혀를 믿지 말라, 오직 사유의 힘만으로 확인해보아라!” 이로써 그는 인식기관에 대한 중요한 비판을 수행했다. 그것이 설령 불충분하고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기는 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는 추상적 개념들을 사유할 수 있는 능력, 즉 이성과 감각을 마치 두 개의 분리된 능력인 것처럼 예리하게 떼어놓음으로써 지성 자체를 파괴했으며, 완전히 그릇된 ‘정신’과 ‘육체’의 분리를 조장했다. 그런데 이 분리는 특히 플라톤 이래 마치 하나의 저주처럼 철학을 억누르고 있다. 모든 감각적 지각은 오직 착각만을 제공할 뿐이라고 파르메니데스는 판단한다. 그리고 이 지각들의 주된 기만은 그것들이 비존재자 역시 존재하며 또 생성 역시 하나의 존재를 가지고 있다고 위장한다는 점이다. 경험적으로 알려진 세계의 다수성과 다양성, 이 세계의 성질들의 변화, 이들의 상승과 하강에서의 질서는 단순한 가상과 공상으로서 가차 없이 폐기처분되었다. 이것에서는 아무 것도 배울 것이 없으며, 따라서 사람들이 감각에 의해 기만당하고 꾸며진 그래서 철저하게 가치 없는 이 세계에 쏟는 모든 수고는 헛된 것이다. 파르메니데스처럼 그렇게 전체적으로 판단하는 사람은 개별적인 것에서는 자연 탐구자이기를 그만둔다. 현상들에 대한 그의 관심은 시들어버리고, 이 감각의 영원한 기만을 떨쳐 버릴 수 없는 증오심이 일어난다. 진리는 이제 내용이 다 빠져버려 창백하기 짝이 없는 일반성들 속에서만, 즉 아무것도 규정해주지 않는 말들의 빈 껍데기 속에서만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거미줄로 이루어진 집 속에 갇혀 있는 것처럼. 바로 이런 ‘진리’의 곁에 이제 철학자가 앉아 있다. 마치 하나의 추상적 개념처럼 핏기 없이 온통 공식들의 거미줄에 갇혀 있는 것처럼. 그렇지만 거미들은 제물의 피를 요구할 것이다. 그런데 파르메니데스적 철학자는 바로 이 제물의 피를 증오한다. 그에 의해서 희생된 경험의 피를(403~405쪽).




 
*** 



나는 파르메니데스가 '존재'와 '비존재(결여)' 사이, 혹은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 사이에 설정한 이러한 이른바 '본질적' 구분을 '서양철학사 3천년의 제1대 사건'이라 부르겠다.






파르헤시아, 아시아류

 


<희랍문학사> - 마틴 호제 / 김남우
       
고대의 후반에 구희극은 본질적으로 정치극이었다. 희극 작가들은 고위층 인사, 그러니까 페리클레스 정도 되는 지도자급 정치인을 공개적으로 실명을 언급해가며 그 사람됨이나 잘못, 악덕을 낱낱이 고발하는 등, 전대미문의 일을 벌였다. 고대의 문학은 이런 유의 공격을 정쟁에 비방 선전문을 도입했던 정치적 출판물로부터 배워왔다.

구희극의 이러한 특성은 분명 구희극 안에 녹아든 사회적 관습에 기인한다. 조롱극이나 가면극 등의 전통에 5세기 아테네의 공공생활이 가진 또 하나의 원리가 추가되었던 것이다: 시민들이 가진 언론의 자유, 즉 '직설(파르헤시아, parrhesia)'(Scarpat 1964년)이 그것이다. 정치적 희극이라 단정할 만한 흔적이 5세기 중반 이전에는 없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신랄한 정치적 풍자가 아티카 지방에 민주주의가 완성되는 시기에 비로소 유행하였고, 이것이 희극에 가능성을 제공하였다고 추측하고 있다(155)


기원전 1세기에는 언어적 준거를 다시 규정하려는 경향이 보인다. 이때에 기원전 5세기와 4세기의 아티카 방언이 문장연습의 모범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런 아티카풍은 우선 로마에서 활동한 희랍 출신 수사학 선생들이 로마의 학생들에게 적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Gelzer 1978년). 아티카풍을 내세운 수사학 선생들은 소아시아의 수사학 학교에서 배우는 언어와 문장을 '아시아류'라고 깎아내렸다. 옥타비아누스가 패배한 안토니우스를 '아시아놈'이라고 낙인찍어 버린 것에 고무되어 희랍문학에서 아티카풍이라는 개념이 급작스럽게 유행하였다.

기원전 30년 이래로 로마에서 모여 호라동하던 희랍 출신 변론술 선생들은 이런 흐름에 이끌려 아티카풍의 수업을 마련하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에게 이름만으로나마 전해지는 바, 시킬리아 섬의 칼레악테 Kaleakte 출신 카이킬로스 Kaikolios 는 <아티카풍과 아이사류의 차이에 관하여 Tini diapherei ho Attikos zelos tu Asianu >와 아티카풍에 관한 저작을 지었다고 한다 [...] 이 모든 저작들은 하나같이 따라해봄직한 아티카풍의 문장연습본을 중심으로 씌어져 있다

기원후 1세기를 거치며 아티카풍은 규준으로 자리잡게 된다. 문자로 기록되는 모든 영역에서 복고풍이 일었으며 이로써 일상언어와 갈라지게 되었다. 이러한 분리는 문학사적으로 커다란 결과를 가져온다. 옛것을 규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강제 때문에 작가들이 아티카풍을 참고할 수 있도록 돕는 뜻에서 사전류들이 만들어졌다.

[...]

과거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보면 아티카풍은 기껏해야 교육제도의 전반적 보수주의적 경향의 한 부분이며 경직된 사고를 나타낸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와 더불어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더 이상 문화적 내지 정치적 중심이 존재하지 않던 희랍 언어권에서 아티카풍과 그 교육기관은 남부 프랑스에서 유프라테스강 지역에 걸쳐 여기저기 살고 있는 희랍어를 아는 지배 계층의 문화적 공통분모로서 500년 동안 유지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공통 분모로 인해서 문화적, 인종적 차이는 쉽게 무시될 수 있었다. 이 기간 동안 생활 구어와, 문학어 즉 '배운 사람들의 언어'는 점점 더 확연히 달라졌다. 하지만 아티카풍의 엄격한 규준과 교육제도의 엄격한 규율이 문학어를 통한 상호교통을 보증하였으며 또한 문학어를 쓰는 사람들의 규합을 가능케 하였다. 이런 관점에서 아티카풍은 로마제국의 안정에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272-274).


* 맺는말


희랍문학은 언제 끝맺는가?


529년 황제 유스티니아누스는 아테네의 아카데미아를 폐교시킨다. 530년 누르시아의 베네딕투스는 몬테가시노에 수도원을 설립한다. 제국의 동방에서도 서방에서처럼 단절이 존재하는가? 이제 '비잔틴 문학'은 희랍의 양식과 전통을 계속 이어가게 되었다. 희랍세계의 정신적 중심은 이제 콘스탄티노폴리스가 된다. 파울루스 실렌타리우스는 논노스의 맥을 잇는 시인이라 하겠다. 563년 1월 6일 '소피아 성당'이 대대적인 수리 공사 후에 새롭게 봉헌되었을 때 그는여섯 소리걸음으로 축제의 시를 지었다. <소피아 성당 소묘>라는 시가 그것이다. 그리고 이제 세상은 완전히 바뀌었다(379).




철학자, 지혜를 추구하는 자

 




<파이드로스> - 플라톤 / 조대호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지혜(sophia)'와 '지혜에 대한 사랑(philosophia)'을 처음으로 구분한 것은 피타고라스(Pythagoras)였다. 그는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일컬어 '지혜를 가진 자'가 아니라 '지혜를 추구하는 자'라는 뜻에서 'philosophos'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런 뜻에서 플라톤은 <<국가>> 475b에서 '철학자'를 지혜, 특히 '모든 지혜를 욕구하는 자'(pases sophias epithymetes)로 정의한다.



- 151쪽. 역주 428.

유럽의 운명 - 중국인과 그리스도교인






<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니체전집 14)> -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 김정현
       

도덕의 계보

* 제1논문 : ‘선과 악’, ‘좋음과 나쁨’
12. 유럽인의 왜소화와 평균화는 우리의 최대 위험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 모습이 우리를 지치게 만들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좀 더 위대해지려는 그 어떤 것도 보지 못한다. 우리는 더욱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며, 좀 더 빈약한 것, 좀 더 선량한 것, 좀 더 영리하고 안락한 것, 좀 더 평범하고 무관심한 것, 좀 더 중국적이고 그리스도교적인 것으로 되어가는 것을 예감하고 있다 - 인간은 의심의 여지없이 ‘더 좋게’ 된다 ...... 여기에 바로 유럽의 운명이 있다 - 인간에 대한 공포와 더불어 우리는 또한 인간에 대한 사랑과 경외심, 인간에 대한 희망, 아니 인간에 대한 의지도 잃어버렸다. 이제 인간의 모습은 우리를 지치게 만든다 - 이것이 허무주의가 아니라면, 오늘날 무엇이 허무주의란 말인가? ... 우리는 인간에게 지쳐 있다 ......

- 376~377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1(니체전집 7)> -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 김미기
       

475. 유럽인과 여러 국가의 파멸 - [...] 동양적인 구름층이 유럽 위에 무겁게 덮여 있었던 중세의 가장 어두운 시대에, 가장 가혹한 개인적인 압박 하에서도 계몽과 정신적 독립의 깃발을 고수하고 동양에 맞서 유럽을 방언한 것은 유대의 자유사상가, 학자 그리고 의사들이었다. 좀더 자연적이고 합리적이며 적어도 비신화적인 세계 해석이 마침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과 지금 우리를 그리스와 로마의 고대 문화에 의한 계몽과 연결하는 문화의 고리가 단절되지 않고 남아있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노력에 신세진 것이 적지 않다. 만약 그리스도교가 서방을 동양화하기 위하여 모든 일을 다고 한다면, 유대민족은 근본적으로 서구를 다시 서양화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서양화하는 것이란 특정한 의미에서는 유럽의 과제와 역사를 그리스적인 것을 계승하는 것으로 삼는다는 의미이다.
- 382







올림피아드, 이교도의 축제

 







<고대올림픽> - 양병우

       
올림픽 경기는 기원전 776년에 창설되어 기원후 393년에 종말을 고하기까지 1168년의 역사를 겪었다(147).



* 에필로그


313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와 리키니우스는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하였다. 그리하여 기독교의 오랜 박해의 역사가 막을 내렸다. 아니 그 최후의 승리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 10년 뒤 로마 제국의 단독 지배를 건 결전에서 리키니우스는 고대의 신들에게 의지하고, 콘스탄티누스는 그리스도의 머리 글자를 그린 깃발 아래 싸웠다. 그 승리는 정치적인 동시에 종교적인 것이었다.


신들이 죽는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짧은 치세(361-363년) 동안에 '신들의 부흥'을 기도한 율리아누스 황제의 노력도 헛된 것이었다. 그가 죽게 되자 "갈리리 사람아, 당신이 이겼다"고 말했다지만, 실은 "태양신이여, 당신은 나를 버리셨다"고 말했다고 한다. 고대의 신은 그를 도울 힘을 잃고 있었던 것이다.


379년 황제로 추대된 테오도시우스 1세에 의해 최후의 일격이 가해졌다. 카톨릭의 세례를 받은 그는 381년에 신들에게 희생을 바치거나 그것으로 점치는 것을 금지하였다. 신전에 참배하는 것을 금지하지는 않았으나, 그때부터 신전의 파괴와 약탈이 시작되었다. 기본은 <<로마제국쇠망사>>에 "로마의 모든 속주에서 광신자의 무리들이 제멋대로 마구 평화로운 주민들을 공격하였다. 그리하여 고대의 가장 아름다운 건조물들의 폐허가 아직도 야만인들이 파괴한 자취를 보여주고 있다. 야만인들만이 그와 같이 힘든 파괴를 할 시간과 성미를 가진다"고 개탄하고 있는 것이다.


마침내 최후의 날이 다가왔다. 제 293회 경기가 열린 393년에 테오도시우스는 올림피아의 제전을 금하였다. 그리고 426년에는 동로마제국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가 모든 신전의 파괴를 명령하고, 올림피아에도 파괴와 약탈의 손이 미쳤다. 그리하여 페이디아스의 걸작인 제우스 신상의 머리를 멀리 수도 콘스탄티노플까지 가져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천 년의,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오랜 역사를 가진 올림픽 경기가 그냥 사라지고 만 것은 아니었다. 아니 사라질 리가 없었다.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다시 금령을 내리고 있는 것을 보면, 5세기 중엽까지 명맥을 유지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본래 농민의 제식에서 나온 그 경기는 그때 다시 그들의 제식으로 되돌아가서 그들의 소원인 풍작을 위해 끈질기게 지속되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177~179


***


1988년 지식산업사(발행인 김경희)에서 나온 정가 2500원의 이 책을 몇 년 전에던가 1500원에 구입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첫장을 넘기니 내가 살 때는 발견하지 못했던 다음과 같은 헌사가 실려 있었다 ...

"박세직 위원장 혜감 - 김경희 증"



러셀의 기술이론

 

* 거짓말쟁이의 역설 - 위키백과


철학과 논리학에서 거짓말쟁이의 역설(Liar Paradox)은 자기모순적 명제를 지칭한다.


나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 이 문장은 거짓이다.


이 말들은 자기모순적인데, 그 이유는 정확히 참 또는 거짓으로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1) '이 문장은 거짓이다'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만약 이 문장이 참이라면, 문장 내용에 의해 이 문장은 거짓이어야 한다.


2) 반대로 이 문장이 거짓이라면, 역시 문장 내용에 의해 이 문장은 반드시 참이 되어야 한다.


거짓말쟁이의 역설은 다음처럼 하나의 문장이 아닌, 여러 개의 문장으로 구성할 수도 있다.


이 다음 문장은 참이다. 이 앞의 문장은 거짓이다.


에피메니데스와 에우불리데스


크레타 사람 에피메니데스(Epimenides)는 기원전 6세기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모든 크레타 섬 사람들은 거짓말쟁이이다.


에피메니데스의 역설을 종종 거짓말쟁이의 역설과 같은 용어로 여기거나, 서로 혼동해서 쓰기도 하지만, 이 둘은 같은 용어가 아니다. 에피메니데스가 의도적으로 거짓말쟁이의 역설을 노리고 글을 썼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며, 이것이 모순된다는 것도 아마도 후세에서야 발견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이 문장은 문장이 거짓일 경우에는 역설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크레타 섬 사람들 중 진실을 말한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이 문장은 거짓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알려진 거짓말쟁이의 역설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기원전 4세기에 살았던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에우불리데스(Eubulides)의 역설이다. 에우불리데스가 에피메니데스의 글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에우불리데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한 남자가 자기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가 말한 것은 참인가? 아니면 거짓인가?


버트런드 러셀


버트런드 러셀은 거짓말쟁이의 역설을 집합 이론의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정리하였다. 그는 러셀의 역설로 알려진 이 역설을 1901년에 발견하였다. 이 역설은 ‘자신을 원소로 가지지 않는 모든 집합을 원소로 포함하는 집합에 자기 자신도 원소로 포함되는지 여부를 고려할 때’ 발생한다. 1) 만약 이 집합에 자신을 원소로 포함한다면, 집합의 정의에 따라 자신은 원소가 되지 않아야 한다. 2) 반대로 만약 자신을 원소로 포함하지 않는다면, 역시 집합의 정의에 따라 자신도 원소가 되어야 한다.


러셀의 역설(Russell's paradox)은 수학자 버트런드 러셀이 1901년 발견한 논리적 역설로 프레게의 논리체계와 칸토어의 소박한 집합론(naïve set theory)이 모순을 지닌다는 것을 보여준 예이다. “특정 영역의 개체의 수는 그 개체의 하등계급 수보다 작다”는 칸토어의 법칙에 대한 연구를 하다가 발견한 것으로 보인다. 그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M이라는 집합을 "자신을 원소로 포함하지 않는 모든 집합들의 집합"으로 정의하자. 다시 말해, A가 M의 원소가 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A가 A의 원소가 아닌 것으로 한다.칸토어의 공리체계에서 위와 같은 정의로 집합 M은 문제없이 잘 정의된다. 여기서 M이 자기 자신을 원소로 포함하는가?란 질문을 던져본다. 만약 포함한다고 가정하면 그 정의에 의해 M은 자신을 원소로 포함하지 않는다. 반대로 M이 자신을 원소로 포함하지 않는다고 가정했을 때에도 역시 그 정의에 의해 M은 자신에 포함되어야 한다. 즉 "M은 M의 원소이다"라는 명제와 "M은 M의 원소가 아니다"라는 명제는 둘 다 모순을 도출하여 맞다 혹은 그르다 중에 어떤 답으로 답할 수 없다.”


프레게의 공리체계에서 M은 "자신을 정의하는 개념에 포함되지 않는다(not fall under its defining concept)"라는 개념(concept)에 해당한다. 따라서, 프레게의 체계 역시 모순을 낳는다. 한편 논리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은 일반인들도 이해하기 쉽게 러셀 자신이 그의 역설을 예로 설명한 것이 세비야의 이발사이야기이다.


만약 세비야에 스스로 이발을 하지 않는 모든 이의 이발만을 해주는 이발사가 있다고 하자. 이 이발사는 이발을 스스로 해야 할까?


만약 스스로 이발을 하지 않는다면, 그 전제에 의해 자신이 자신을 이발시켜야 하고, 역으로 스스로 이발을 한다면, 자신이 자신을 이발시켜서는 안 된다. 이는 바로 러셀의 역설과 동일한 문제에 걸리는 것이다.


알프레드 타르스키


알프레드 타르스키(Alfred Tarski)는 스스로를 다시 참조하지 않는 문장들도 조합할 경우 스스로를 다시 참조하면서 역설적이 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논하였다. 이러한 조합의 한 예는 다음과 같다.


1) 2번 문장은 참이다.


2) 1번 문장은 거짓이다.


타르스키는 이러한 '거짓말쟁이의 순환(liar cycle)' 문제를 “하나의 문장이 다른 문장의 참/거짓을 참조할 때, 의미상 더 높도록 하여” 해결하였다. 참조되는 문장은 '대상 언어(object language)'의 일부가 되며, 참조하는 문장은 목표 언어에 대한 '메타 언어(meta-language)'의 한 일부로 간주된다. 의미 계층(semantic hierarchy)의 더 높은 '언어들(languages)'에 있는 문장들은 '언어(language)' 계층에 있는 낮은 순위의 문장들을 참고해야 하며, 순서를 거꾸로 바꾸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것은 시스템이 자기 참조가 되는 것을 막는다.
 
 
 
 
 
 
 
* 도올 김용옥, 『중용 한글역주』, 통나무, 2011.
 
 
 
 
 
 
통서: 인문주의 혁명의 여명



존재론의 역사



종교는 본시 존재론(存在論)이 아니다. 존재론이란 존재 일반에 관한 논(로고스, logos), 혹은 존재자에 관한 논을 의미하지만, 이때 “존재”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혹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하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존재에 관한 어떠한 논의도 생산적인 결말을 제시하지 않는다. 서양철학사의 전통에서는 존재를 “~는 있다”라는 사태로 접근하지 않고, 항상 “~이다”라는 사태로 접근하는 성향이 있다. “~이 있다”라는 사태는 너무도 즉각적이고 완정한 사태이며, “존재”라는 수식이나 규정을 따로 필요로 하지 않는다. 사실 우리말에서 “존재”라는 말은 존재할 필요가 없다. 기본적으로 그것은 서양철학의 개념이 일본사람들의 역어(譯語)를 통하여 우리말로 편입된 것이다. 엘레아학파의 파르메니데스는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라는 유명한 명제로부터 출발하여 있는 것, 즉 존재를 불생(不生)ㆍ불멸(不滅)ㆍ불변(不變)ㆍ부동(不動)의 연속충실체(連續充實體)로서 규정하고, 유(有)를 비유(非有)ㆍ생성(生成)에 대립시켰다. 플라톤은 이러한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론을 이어받아 참으로 있는 것으로서의 “이데아”론을 성립시켰고, 생성의 세계를 엮어 넣으려는 생물학적 성향의 아리스토텔레스조차도 존재의 궁극적 원인으로서 제1실체를 일체의 질료적 한정을 갖지 않는 순수형상(純粹形相)으로 규정하고, 그것을 변역(變易)의 가능성을 포함하지 않는 “부동(不動)의 사동자(使動者)”, 즉 하나님으로 간주함으로써, 존재(esse)와 본질(essentia)이 하나님에 있어서는 일치한다고 하는 모든 중세 스콜라철학적 사유를 개창하였다. 그러니까 존재의 문제는 “있다”라고 하는 소박한 현실을 떠나 “무엇이 참으로 있는 것인가?”라는 진리의 문제로 비약하게 된다. 그런데 “참으로 있는 것”은 항상 “있는” 것들을 부정하게 되므로, 진리의 존재란 있는 것들을 넘어서서 있는 것이 된다. 그 넘어서서 있는 것들의 궁극에 항상 하나님이 있게 되고, 따라서 존재론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존재에 관한 논이 되고 만다. 결국 존재론은 “~ 있다”가 아니라, “진정한 존재는 하나님이다”로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중세신학을 지배한 것은 하나님의 존재 증명이었다.



존재론(ontology, ontologia)이라는 용어가 서양에서 고대로부터 사용된 것처럼 착각하는 것은 큰 오류이다. “온톨로기아”라는 말은 17세기 독일 스콜라철학적 논리학자인 고클레니우스(Rudolf Goclenius, 1547-1628)의 용례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哲學辭典』, 1613). 비스한 시기의 칼로비우스(Abraham Calovius, 1612–1686)는 온톨로기아(ontologia)를 메타피지카(metaphysica)라는 말과 거의 구분이 되지 않게 사용하였다. 독일 근대 데카르트학파의 사상가인 클라우베르크(Johannes Clauberg, 1622~1665)는 존재론이란 말 대신에 존재지(存在智, ontosophia)라는 말을 만들어 아리스토텔레스적인 보편학의 의미로 사용하였다. 이러한 전통을 계승하여 “온톨로기아”를 철학적 술어(philosophical term)로서 정립한 사람이 18세기 초 독일의 합리주의를 대변한 철학자 볼프(Christian Wolff, 1679~1754)와 바움가르텐(Alexander Gottlieb Baugarten, 1714~1762)이었다. [...] 볼프에 의하면 존재론의 방법은 연역적이며 모순을 허용하지 않는다. 모든 존재는 필연적으로 존재하며 그 나름대로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라이프니츠가 말한 충족이유율을 만족시킨다. 우주는 존재들의 총합이며, 그 개개 존재들은 모두 지성이 명석판명한 관념으로서 파악할 수 있는 본질을 가지고 있다. 의심할 바 없는 제1원리로부터 연역된 존재들에 관한 진리는 모두가 필연적 진리이다. 따라서 존재론은 세계의 우연적 질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볼프의 존재론은 현상계와 유리된 체계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존재론은 칸트의 비판의 대상이 된다(22~25).



칸트의 존재론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이러한 볼프의 존재론을 그의 선험철학으로 대치시켰다. 그러나 칸트의 선험철학은 존재론이라기보다는 인식론적 탐색 속에서 전개되는 것이며, 그의 선험철학은 비록 선험성을 강조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현상계의 질서 밖으로 이탈하지 않는 것이다. 칸트에게 있어서 현상계(現象界, 감성感性의 대상)와 가상계(可想界, 오성悟性의 대상)의 구별은 플라톤적 실재론과 유사한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실상은 플라톤의 실재론적 관념론을 정면으로 거부한 것이다. 가상계를 오성이 인식하는 참 대상이라고 생각한 것은 플라톤의 오류이다. 인간의 오성은 오히려 감성계에만 적응되는 것이다. 칸트의 물자체(物自體, Ding an sich)라는 것도 감성계를 초월하는 것이 아니라, 감성계의 궁극적 근거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물자체도 현상계와 연속적 일체를 이루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단지 물자체는 불가지(不可知)의 대상일 뿐이다. 물자체가 순전한 가구(假構)일 수는 없다.
 
 
칸트에게 있어서 존재론은 선험적[=초월적] 분석론(Transcendental Analytic)으로 통섭되는 것이다. 칸트는 볼프가 말하는 특수형이상학인 신학과 심리학과 우주론은 선험적[=초월적] 변증론(Transcendental Dialectic)에 귀속시키고 일반형이상학인 존재론은 선험적 분석론으로 귀속시켰다. 따라서 존재론은 선험적 분석론의 주제인 오성의 인식과 관계할 뿐이다. 오성은 감성의 한계를 넘어설 수 없다. 감성의 한계 내에서 주어지는 대상에만 한정되는 것이다. 오성의 원칙들은 현상을 해명하는 규칙일 뿐이다. 전통적으로 존재론이 마치 사물일반의 종합적인 선천지식을 체계적 이론의 형태로서 제공하는 대단한 이론인 양 떠벌이지만, 이제 소위 존재론이라는 과시적 명칭은 ‘순수 오성의 한갓[된] 분석론’이라는 겸손한 이름으로 대신되어야만 하는 것이다(『순수이성비판』, B303). 따라서 존재론은 사물일반과 관계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의 구체적 대상들과 관계하는 것이다. 칸트의 존재론은 현상론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오성의 한계를 넘어서는 자유로운 이성의 이상으로서의 최고존재인, 하나님의 관념에 대한 존재론적 증명도 선험적 분석론에 국한되는 겸손한 존재론의 근거 위에서 그 불가능성이 입증되고 있는 것이다. 존재(存在)는 현존(現存)과 혼동될 수 없다. 그 무엇이 현존한다고 우리가 말한다면 그 말은 항상 종합적(=경험적) 판단이다. 존재론적 증명(ontological proof)이란 하나님이라는 개념 그 자체로부터 연역적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도출해내는 것이다. 하나님이란 개념은 하나님의 완전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 존재론적 증명을 주장하는 사람들은(중세기로부터 데카르트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완전한 존재(a perfect being)는 반드시 존재성을 포괄하는 모든 술어를 소유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이 완전한 존재라면 존재성을 술어로서 가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존재가 하나님의 필연적 속성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존재한다는 것이다(26~27).
 
 
하이데가의 존재론



아주 쉽게 한 예를 들어보자! 누가 이런 말을 했다고 생각해보자! “도올 김용옥은 존재한다. 도올 김용옥은 『여자란 무엇인가』를 썼다. 도올 김용옥은 사과를 먹고 있다.” 이 말에서 김용옥에 관한 속성은 둘일 뿐 셋이 될 수가 없다. 도올 김용옥이 존재한다는 것은 도올 김용옥이라는 개념에 아무 것도 보태는 것이 없다. 따라서 존재는 술어가 될 수 없다. 그것은 술어들의 빈 ‘자리’일 뿐이다. 하나님의 현존(現存)이 하나님의 본질 속에 있을 수는 없다. ‘가장 실재적인 존재’라는 개념을 생각할 때에, 그 존재가 현존한다는 것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그 개념의 밖으로 나와야(herausgehen) 한다. 감관의 대상의 경우에는, 대상이 경험의 법칙에 따라 나의 어떤 지각과 연결될 때에 이것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가장 ‘실재적인 존재’라는 개념은 순수 사고(pure thought)의 대상일 뿐이며, 우리는 그들의 실재를 인식하는 수단이 전혀 없다. 순수 사고의 객관은 전적으로 선천적으로 인식될 뿐이며, 현존이란 경험을 통해서만 확립되어지기 때문이다. 경험의 통일성을 벗어나는 어떠한 존재도 우리가 정당화할 길이 없는 가정에 머물고 만다. 모든 존재론적 명제는 종합적(경험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칸트의 존재론은 하이데가의 다자인(Dasein, 現存在)의 존재론으로 발전된다. 하이데가는 철학의 출발점을 데카르트처럼 ‘나(I)’라는 유아론(唯我論)적 실체로부터 출발하지 않는다. 나의 의식이 지각된 세계를 구성한다는 의미에서 칸트의 인식론도 유아론적 성격이 있다. 하이데가는 ‘나’라는 실체적 존재를 버리고 “거기에 있다”라는 의미에서 ‘다자인’을 새로운 철학적 어휘로서 제시한다. 하이데가는 “~이다”에서 “~있다”로 철저히 귀환한 것이다. ‘거기에 있는’ 다자인은 이미 세계 속에 주어져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세계 내의 존재이다. 다자인과 세계내존재(世界-內-存在, In-der-Welt-Sein)은 결국 같은 의미가 된다. 다자인이 타존재들과 구분되는 것은 존재하면서 자기의 존재, 그리고 존재하는 것들의 존재를 이해하는 유일한 존재자라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다자인은 ‘존재론에 앞서는(pre-ontological)’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다자인은 세계 안에 이미 던져진 존재(被投性, Geworfensein)이다. 자기 및 자기 이외의 것을 이미 이해한다는 것은 그것을 이미 초월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므로 이러한 의미에서는 미래를 향하여 투기(投企)하는(entwerfen), 즉 미래를 계획하는 존재이다. 이와 같이 던져져 있으면서 미래를 계획하고 ‘본래적 자아’를 실현하는 것이 실존의 전정한 모습이다(27~28).
 
 
럿셀의 기술(記述) 이론



여태까지 대강 서양철학에서 말하는 존재론의 골자를 살펴보았지만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존재론의 과제가 존재 그 자체를 대상으로 삼을 때는, 그 논의가 항상 ‘있는 것’을 초월하여 현적(玄寂)한 공리(空理)로 달아나 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있는 것’에 대하여 우리는 ‘존재’를 운운할 필요가 없다. 횡거(橫渠, 1020 ~ 1077)의 말대로 태허(太虛)가 곧 기(氣)라는 것을 알면, ‘없음’은 있을 수가 없다(無無). 그렇다고 없음에 대한 있음이 불생불멸불변의 동일성을 지녀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있는 것은 끊임없이 쉬지 않고 변하는 것이다. 지성무식(至誠無息)이다. 서양의 철학전통에는 근원적으로 파르메니데스적인 존재론만 있고, 헤라클레이토스적인 존재론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앞서 예를 든 알츠하이머 목사님의 경우 “예수가 누구여”라고 말했다고 해서 그의 신앙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예수라는 고유명사는 존재의 대상이 아니며 따라서 신앙의 대상도 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존재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은 반드시 기술(記述)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기술은 궁극적으로 존재를 해체시킨다.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사람이 서울시장으로 당선되었다”라는 명제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사람’은 단 한 사람이며, 따라서 그것은 한정된 기술(definite description)이다. 그리고 이 문장의 주어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사람’이 고유명사로서 인식될 수는 없다. 이 기술구(句)는 한 사람을, 이름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특유한 속성으로써 나타낸 것이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고유명사적인 어떤 존재를 지칭하지 않는다.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사람’이 한(韓) 모인지 오(吳) 모인지를 몰라도 아무 상관이 없다. “거북선을 만든 사람은 이순신이다”라는 명제는 논리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다. 그러나 “거북선을 만든 사람은 존재한다”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이순신은 존재한다”라고 말할 수가 없다. 그것은 시끄러운 공기의 떨림일 뿐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는다. 그것은 의미는 없지만, 무엇을 지시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순신 본인을 눈앞에서 곧 바로 지시할 수는 없다. 이순신은 우리의 직접 감관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의 집에 지금 3살 짜리 어린 아들이 있다고 하자. 이 아들은 나를 알아본다. 내가 누구인지를 안다. 그리고 딴 집 아이들이 ‘아빠’라고 부르는 것처럼 나를 ‘도올’이라고 부른다고 하자! 그에게 있어서 ‘도올’은 나를 지시하는 고유명사이지만, 그 자체로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것’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나 똑 같은 말이지만 세상 사람들이 나를 ‘도올’이라고 부를 때는, 실상 세 살 먹은 아들이 ‘도올’이라고 부르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도올 김용옥 선생’은 고유명사이지만 실상 외연만 있고 의미가 없는 순수한 고유명사가 아니다. ‘도올 김용옥 선생’이라는 고유명사는 수없는 기술의 축약태이다. 그들은 나를 실제로 만난 적도 없고, 나를 세 살 난 아들이 지시하는 것처럼 직접 감관에 의하여 지시해본 적도 없다. ‘KBS에서 『논어』를 강의한 사람’이라든가, ‘MBC 라디오 어느 시간에 어느 코미디언이 흉내를 내는 사람’이라든가, ‘머리를 깎고 한복을 입은 철학자’라든가, ‘『논어한글역주』의 저자’라든가 하는 수없는 기술구들이 ‘도올 김용옥 선생’이라는 말 속에 축약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도올 김용옥 선생’은 순결한 고유명사가 아니다. 순결한 고유명사는 그것 자체로 어떤 대상을 지시하고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어색한 문법이 되고 만다. 따라서 “『논어한글역주』의 저자는 존재한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 “도올은 존재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서양언어의 신택스(syntax, 統辭論)으로는 타당하지 않다. ‘도올’이 축약된 기술구라고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기술구로 바꾸어질 때 비로소 존재한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럿셀이 말하는 ‘기술(記述)의 이론(the theory of description)’이다.
 
 
이 럿셀의 기술이론은 주어-술어 형식의 서구적 언어에서 파생되는 존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내가 “황금산은 존재하지 않는다(The golden mountain does not exist)”라고 말했는데, 만약 누군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What is it that does not exist?)”라고 묻게 된다면, 나는 “그것은 황금산이다(It is the golden mountain)”라고 대답하게 될 것이다. 외견상 매우 자연스러운 대답 같지만, 이렇게 대답함으로써 나는 존재하지 않는 황금산에게 존재를 부여하는 꼴이 되고 만다. 황금산은 결코 고유명사가 아니다. 그것은 기술구이며, 그 기술이 적절하게 이루어지면 ‘존재’를 운운할 필요가 없게 된다.



“황금산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명제는 실제로 다음과 같은 기술구로서 바꾸어 표현될 수 있다.



“‘x가 금으로 되어 있으며 또 산 같이 생겼다’라는 진술이 x가 c일 때는 참이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참이 아닌 그러한 c는 없다



There is no entity c such that 'x is golden and mountainous' is true when x is c, but no otherwise.”
 
 
이렇게 바꾸어 표현하면 ‘황금산’이라는 주어적 존재자는 사라지고 만다.
 
 
“『논어한글역주』의 저자는 존재한다”라는 진술도 ‘『논어한글역주』의 저자’라는 실체의 존재성을 확보하기 위한 명제가 아니다. “『논어한글역주』의 저자는 존재한다”라는 진술은 “‘x가 『논어한글역주』를 썼다’라는 명제함수가 ‘x는 c이다’라는 진술과 항상 동일한 사태라는 것을 참이게 만드는 그러한 c의 값이 있다”라는 의미가 된다. 이때, ‘존재’는 기술된 것에 대해서만 주장될 수 있는 것인데, 그것은 분석되고 보면 변항(變項)의 최소한 하나의 값에 의하여 참이 되는 명제함수의 한 케이스가 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따라서 존재는 근원적으로 해소되고 만다. 고유명사에 대해서도 존재를 말할 수 없으며 기술구에 대해서도 그 기술구를 고유명사로 확정시키는 대상적 실체는 사라지고 만다. ‘이러이러한 것(the so-and-so)’이라는 형식을 취하는 진술을 올바로 분석하면 ‘이러이러한 것’이라는 문구는 사라지고 만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는 우리 입장에서 보면 너무도 번쇄하고 하찮게 들린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서구인들이 그 얼마나 수천 년을 통하여 허구적인 논리적 구성물의 존재성의 핍박 속에서 살아왔는가 하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그리고 그 반박을 위하여 그 얼마나 치열한 논리적 열정에 철학적 열정을 불사르고 있는가 하는 것을 경복과 감탄 속에서 되새겨 보게 만든다. 그러나 나는 이 순간 이러한 ‘존재성의 해소’야말로 『중용』을 읽는 이들의 마음가짐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선포하려는 것이다.
 
 
“예수가 누구여”라고 반문하는 알츠하이머 목사님은 진실한 신앙인으로서의 본래적 면모를 드러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예수’가 그 얼마나 생소한 고유명사였을까? 대한민국의 우매한 생령의 거개가 ‘예수’를 존재자로서 믿는다고 말하지만, 과연 그 존재자가 그들의 실존의 내면으로 융합되는 상황이 과연 몇 케이스나 있을까? ‘예수’라는 고유명사의 어색함, 그 존재자의 허구성은 그들의 영혼을 갉아먹고 위선적 인격의 분열로 그들을 휘몰아가고 있지 아니 한가? 그리하여 모든 정치적ㆍ민족적ㆍ민생적 분열을 조장하고 있지 아니 한가?
 
 
앞서 칸트가 “우리 사유의 대상이 개념에 실재성을 귀속시킬 수 있기 위해서는 우리는 반드시 그 개념의 밖으로 나와야 한다”(『순수이성비판』 B629)는 말을 했는데, 이것은 스피노자의 범신론적 논의의 관점에서 보아도 너무도 정당한 것이다. 하느님은 전지ㆍ전능의 일체만유(一切萬有)를 포섭하는 존재자이기 때문에만 하나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존재자의 개념은 무제약적인 것(the unconditioned), 무한한 것(the unlimited) 이다. 그런데 우리는 무제약적이고 무한한 것 “밖으로 나갈” 길이 없다. 우리가 그 밖으로 나가버릴 수 있다면 그것은 무제약적이고 무한한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저기 나무가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나무 밖으로 나왔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렇게 제약되고 한정될 때 비로소 나무는 존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칸트의 존재론에 의하면 존재를 술부에 귀속시키는 모든 명제는 종합적이다. 존재는 오성의 판단의 대상일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반드시 우리의 지각과 연결되어야 한다. 그러나 순수 사유의 대상에 대해서는 그것의 실체를 인식할 수 있는 수단이 전혀 없다. “전지자(全知者)”는 “부분적으로 안다”라는 우리의 현실적 경험의 인식으로부터 추상되어 그 극한점으로서 “모든 것을 안다”라고 상정된 것이다. 이것은 경험의 대상이 아니라 순수사유의 대상이며, 경험의 한계를 타파하는 자유로운 순수이성의 장난이다. “부분적으로 능하다”는 것은 우리가 경험상으로 인식 가능한 것이지만 “만유일체의 모든 것에 능하다”라는 것은 경험에서 상대적으로 추론된 논리적 구성일 뿐이다. 따라서 “전지ㆍ전능자”라고 하는 것은 유한한 인간의 체험세계에 대하여 상대적인, 절대자로서 상정된 논리적 구성물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논리적 구성물은 존재의 대상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존재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둥근 사각형은 존재하지 않는다”에서 우리는 “둥근 사각형”에 존재성을 부여할 수 없지만, 또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는 둥근 사각형이 주어의 자격도 가질 수 없지만, “둥근 사각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진술은 우리의 일상언어 속에서 의미를 갖는다. 둥근 사각형이 의미를 갖는다고 해서 그것이 꼭 존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존재성과 의미성의 충돌을 해결하고 있는 학설이 바로 럿셀의 기술 이론인 것이다.
 
 
“하나님은 전능하다”라는 한국어 문장에서는 우리는 존재의 문제를 찾을 길이 없다. “전능하다”에서 “하다”는 “있다”를 내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문장을 영어로 바꾸어 놓으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God is omnipotent.” 이 명제는 두 개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하나님(God)과 전능(omnipotent)이다. 그런데 하나님과 전능은 “is”라는 연결사(copula, 계사繫辭)로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칸트의 말대로 이 연결사는 단지 하나님과 전능을 연결시키는 연결사일 뿐이며, 이 연결사가 하나님의 개념에 새로운 속성을 첨가하지는 않는 것이 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God is omnipotent.”라는 문장에서 전능이라는 속성을 제거하면 “God is.”가 된다. 그런데 이것은 아무 것도 의미하지 않는 말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도깨비방망이처럼 “하나님은 존재한다”라는 명제로서 의미를 갖게 된다. 따라서 인도유러피안어족의 말에 있어서는 “이다”와 “있다”가 항상 혼동되게 마련이다. 중국어에서는 “上帝全能”이라고 말하면 될 것이며 양자를 연결하는 be 동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上帝全能”이라는 명제를 놓고 존재의 문제를 고민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럿셀은 기술 이론을 발표하면서, “플라톤의 『테아에테투스』로부터 시작된 존재에 관한 2천 년 동안의 뒤죽박죽된 대가리 속의 엉크러짐을 다 풀어버렸다(This clears up two millennia of muddle-headedness about 'existence,' beginning with Plato's Theaetetus)”라고 시원하게 일성(一聲)을 갈(喝)했지만, 사실 그것은 『테아에테투스』의 문제라기보다는 서구 언어에 내장된 문제이며, 『테아에테투스』의 인식론을 왜곡시킨 중세기독교의 독단의 문제일 것이다. 아마도 알츠하이머 목사님이 “예수가 누구여”라고 말한 것은 일생을 통하여 억지로 주입된 어색한 인도 유러피언어적 언어의 질곡에서 해방되어 매우 자연스러운 모국어의 본질로 회귀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God is omnipotent”라는 말에서 “God”도 존재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omnipotent”도 존재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is”도 존재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따라서 “God is omnipotent.”라는 명제는 근원적으로 존재를 나타내는 명제일 수가 없다. 단지 무의미하지 않다는 사실만 최종적으로 남을 뿐이다. 칸트의 말을 빌리면 “하나님은 전능하다”라는 판단은 순수이성의 자유에 속하는 것이며, 따라서 오성의 범주를 적용하면 이율배반에 빠진다(선험적 변증론에서 다루어지는 문제이다). 따라서 감성의 한계를 넘어서는 이러한 전칭적인 명제들은 실천이성의 영역 속에서 다루어진다. 그러나 우리가 『중용』을 읽을 때 조심해야 할 사태는 『중용』에 내재하는 암묵적 체계 속에서는 결코 순수이성과 실천이성의 이분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28~34).
 
 
형용사니 동사니 명사니 하는 개념규정 자체가 서구 언어를 기준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과연 그 개념지도를 가지고 한문을 문법적으로 규정한다는 것이 얼마나 정당한지 나는 알 바 없다(41).
 
 
종교란 개인이 자신의 고독을 처리하는 방식이다. Religion is what the individual does with his solitariness. -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78)
 
 
서양언어, 특히 서양종교에 세뇌된 언어의 용례 때문에 이러한 유교적 본래용법의 함의가 심하게 왜곡되고 있는 것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구원하는 자와 구원받는 자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어떻게 신부 앞에서 죄를 고백하고 죄사함을 얻는단 말인가? 비밀만 지켜진다면 기분이 좀 경감되는 느낌은 있을지 모르겠으나 참으로 가소로운 일이라 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인간에게서 죄인과 죄사함의 주체가 분리될 수 있단 말인가! 인간은 오로지 자기 스스로 구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중용』의 ‘자성(自成)’(스스로 이루어 나갈 수밖에 없고) ‘자도(自道)’(스스로 길지워 나갈 수밖에 없다)의 투철한 논리이다. 『중용』은 이러한 논리를 한 치도 양보하지 않는다. 군자의 길과 소인의 길은 나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자기를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 자에게는 오직 파멸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259~260).

       




 

* 도올 김용옥, 『중용 한글역주』, 통나무, 2011.



인간, 폴리스적 동물





<그리스인의 이상과 현실:서양철학의 뿌리> - G.L.디킨슨 / 박만준 외





모든 미적 효과는 윤리적 전제에 의해 제약된다. - 218


       
윤리, 그리고 미적이라는 日本語가 현대 한국인들에게 일종의 착시 효과를 일으킨다.
이는 이들 단어를 ethos(성격, 인격, 성품, 태도)를 연구하는 학문인 ethike 그리고 aisthesis로 바꾸어 생각해보라.
그리고 바로 이런 의미에서 오늘 일본인들에 의해 倫理學이라 번역되어 통용되고 있는 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용어는 차라리 性格學으로 번역되었어야 할 것이다 (마치 역시 아리스토텔레스의 용어인 physika가 物理學이 아니라 自然學으로 타당히 번역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보통 이른바 정치적 동물 혹은 사회적 동물이라 번역되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zoon politikon 역시 '폴리스(polis)적 동물'이라는 바로 그 의미이다.
인간의 본질, 성격은 폴리스 안에서만, 곧 그가 속한 폴리스의 종교적인 동시에 정치적/사회적인 활동 안에서만 성취가능한 것이다.
오늘날의 자연과 윤리와 사회와 정치와 종교가 이 고대의 그리스인들에게는 '아직 분리되지 않은' 전체로서의 하나였던 것이다.







       
* G. L. 디킨슨, 『그리스인의 이상과 현실: 서양철학의 뿌리』(1961), 박만준ㆍ이준호 옮김, 서광사, 1989.



그리스에는 교회나 교의(敎義), 그리고 지켜야 할 강령조차 없었다. [...] 사제들이 있기는 했지만, 그들은 단지 일정한 종교적 의식을 행하기 위해 임명된 관리에 불과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그리스에는 성직자와 속인의 구별이 없었다. 시와 교리의 구별도 없었다(13~14)
사람들은 종교를 가짐으로써 이 세계에서 편안해질 수 있었으며, 이것이 우리가 주목해야 할 첫 번째 사항이다. [...] 결국 신적인 것, 즉 그리스인의 말에 의하면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것’은 모두 맹목적인 운명의 성격을 갖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가진 사람은 접근할 수 있는 것이었다(16~17).
신들과 인간 사이에는 장벽이 없었다. [...]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에는 교회가 없었다는 사실 때문에 결코 국가가 승인하는 종교도 없었다고 잘못 이해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종교는 국가의 본질적인 것이었으며, 전반적이고도 세부적으로 국가의 전체 구조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었기 때문에 분리하여 생각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들이 사용하고 있는 말의 의미에 있어서의 교회, 즉 국가로부터 분리된 독립적인 조직으로서의 교ㅚ가 그리스에 없었던 까닭은, 어느 측면에서 국가 그 자체가 하나의 교회였으며 또한 국가는 부분적으로 혹은 전체적으로 자연 세계를 주재하고 있는 동일한 신들로부터 승인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그리스 종교가 정치적 생활의 정신적 측면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21~22).
그리스 종교는 논리적인 문장으로서가 아니라 종교 의식의 형태로 표현되었으며, 이런 점에서 기독교 신앙에서의 프로테스탄트보다는 로마 가톨릭에 더 가까운 것이다. [...] 불완전하게 전해져 내려오는 기록들과 우리의 견해로 추정해보면, 디오니소스 축제는 전형적인 그리스적 종교 축제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스인의 천재성. [...] 그리스 종교는 종교적 의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리스인의 독특한 성격이 고찰된 그 초기에 있어서는 그들의 내적 세계와 외적 세계를 분리시키 고찰하려는 의도는 잘못된 것이다(25~26).
그리스 신들은 그 형상 면에서는 본질적으로 인간과 같지만 인간보다 탁월한 존재인데, 그것은 정신적 혹은 무형적 속성에서가 아니라, 힘, 아름다움, 불멸성 등과 같은 외부로 나타나는 재능에서 탁월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그리스인과 신의 관계는 내면적ㆍ정신적인 것이 아니라 외면적ㆍ기계적인 것이었다(30).
인간과 신의 모든 관계는 일종의 계약과 같은 성격을 지닌 관계이다. “만약 너희들이 할 일을 다 한다면, 나도 그렇게 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나도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이 말은 한 쪽에만 통하는 것이 아니다. 이 의미는 도덕적이거나 정신적인 것이 아니라 법률적(계약적)인 것이다. 우리들이 말하는 종교적 의미의 죄나 양심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다(34).
외형적인 의식에 의해 치유될 수 있는 신체적 질병으로서의 죄의 개념(그리스)
오직 은총으로서만 멀리 쫓아낼 수 있는 양심에 대한 질병으로서의 죄의 개념(그리스도교) (37)
아이스퀼로스 비극의 주제는 바로 죄와 그 죄에 대한 벌로 일관한다. [...] 그의 주제는 참된 의미에서 죄를 지은 자의 도덕적 양심에 관한 것이 아니라, 지은 죄에 가해지는 객관적 결과에 대한 것이다. [...] 흔히 말하는 비극은 “피는 반드시 피를 부른다”는 외면적ㆍ객관적 법칙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며, 단지 그것이 전부이다. [...]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그리스적 관념은 내적이거나 영적인 것이 아니라 외적이며 기계적인 것이다(37~40).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에서] 무신론자는 필연적으로 반사회적ㆍ비도덕적일 수밖에 없다는 가정. [...] 이 시의 지은이[아리스테파네스]에 의하면, 이성에 대한 예찬은 사리사욕에 대한 예찬과 동일한 것이다. 그가 뜻하는 바는 곧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은 가족이나 국가도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71).
그리스의 국가 규모가 그 형성 과정에서 극히 우연적인 성격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그 규모가 무한정 확장될 수 있었으며, 그러면서도 국가의 본질적 성격은 유지될 수 있었으리라고 상상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그 국가의 규모는 바로 국가 개념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것이다(80).
오늘날 우리들이 말하는 ‘공적 생활’이란 [...] 완전한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고 불가결한 것이었다. [...] 국가의 이상과 개인의 이상은 결코 서로 모순되지 않으며 거의 구분조차 될 수 없었다. [...] 우리는 개인을 전체를 위해서 희생되는 존재로 간주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체 속에서(만) 스스로를 실현한다고 보아야 한다(82~84).
이[데모스테네스의 연설]와 같이, 보편적 원리인 법은 개인적 성향으로서의 본성과는 대립되는데, 이러한 대립 속에는 법과 정의는 동일하다는 묵시적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85).
고대 그리스 국가는 일차적으로 군사 조직되었으며 또 그렇게 존속되었다. [...] 사실 『국가』 전체를 통해 플라톤이 가장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상인 계급이 아닌 군인 계급이다. [...] 시민에 대한 귀족적 관념. [...] 그리고 우리가 덧붙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개인의 탁월한 능력에 대한 대체적인 그리스인의 관점이 바로 이러한 귀족적 관념과 결부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93).
우리는 스파르타에서 극단적으로 발전한 그리스 정치의 한 형태를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아마 그리스의 독자적인 정치 모형에 가장 근접한다고 볼 수 있겠다. [...] 무조건적인 국가 유지는 곧 개인이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목적이 되었다(109).
플라톤이 주장한 이상 국가는 대개 스파르타를 그 전형으로 삼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스파르타 정치 체제의 본질적인 결함은 군사적인 덕만을 배타적으로 고집한 것, 그리고 삶의 조화로운 측면을 지나치게 억압한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114).
아테네의 정치 체제는 마지막에 극단적인 민주주의로 끝나는데, 이것은 그리스 국가의 일반적인 정치 체제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118).
“간단히 말해 아테네는 헬라스의 학교이며, 고유의 인격을 갖춘 아테네인 한 사람 한 사람은 최고의 품위와 재능을 갖추고 자신을 다양한 형태의 현실에 적응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냥 하는 헛소리가 아니라 진리이며 사실이다.” - 투키디데스가 전하는 페리클레스의 연설(125)
우리는 그가[플라톤이] 가르친 주제가 바로 정의의 이념을 강한 자의 이해와 동일시하는 것으로부터 구출하는 것이었으며, 또한 정의의 이념을 만인의 보편적 이해로 재확인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129).
오늘날 우리가 덕(德, virtue)이라 옮기는 단어[arete, ἀρετή]는 탁월성(excellence)으로 옮겨져야 마땅하며, 또 그것은 영혼에 대한 의미만이 아니라 육체에 대한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 “아름다운 육신 안에 아름다운 영혼” [...] 그리스인에게 훌륭한 육체와 훌륭한 영혼의 상관관계는 필연적이다. 그들이 목표로 삼은 것은 균형과 조화였다. 육신에 영혼의 아름다움이 반영되지 않은 한 그들은 영혼의 아름다움을 거의 믿지 않았다(137~141).
중용. 델포이의 신전. “지나치면 쓸모 없다.” [...] 나쁘다고 여겨지는 것은 욕망 그 자체가 아니라 균형을 잃거나 그릇된 욕망의 방종이라는 것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분별 있는 사람’(êthos의 학, ethikē)이 “당연한 경우에 적정한 시간 동안 적절한 방식으로 상응하는 사람에게 화를 내는 것.” [절대적 법칙의 기계적 적용이 아닌, 각 개인의 상황에 따르는 유동적 작용 = 실천적 지혜 pronesis] 모든 삶은 그 삶을 사는 인간에 의해 구체화된 예술 작품이다. 그 작품의 질은 예술가 자신의 능력에 일치할 것이며, 모든 경우에 그 자신이 직접적으로 지각하는 것에 대체될 수 있는 일반적 규칙은 결코 없다. 선은 올바른 비례, 올바른 방식, 올바른 경우이다. 반면 악은 ‘옳음’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인간의 본성을 구성하는 요소들 그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니다. 그것들은 다만 선이나 악이 구체화될 수 있는 순수한 소재일 뿐이다. /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상은 전적으로 그리스적이다(147~148).
육체의 욕망과 영혼의 정념을 제어하는 이성이라는 마부. 그리스 최고의 금욕주의자 플라톤조차도 우선 그리스인이며 그 다음에야 비로소 금욕주의자인 것이다(149).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들의 관계는 연인의 관계인 동시에 친구의 관계였다(159).
우리가 아는 한, 고대 그리스에서 혼인과 관련된 연애는 거의 없거나 전무했다. 데모스테네스는 결혼은 아이를 낳기 위한 합법적 수단이라고 정의했다. [...] 우리는 [...] 아테네에서 혼인이 당사자의 관심과는 아무런 관계없이 오직 나이, 재산, 친분 관계 등에 따라 아버지에 의해 정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신이 혼인 제도를 명령했다는 크세노폰의 말(164~165).
그리스에서 우정은 하나의 제도라고도 할 수 있다(175). 테베군단. 플라톤에게 있어 사랑은 모든 지혜의 실마리이다. 그리고 모든 사랑의 형태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남성이 다른 사람에 대해 느끼는 사랑이고, 정신적 사랑이며, 또 특정한 육체와 영혼에 대한 정열로부터 최고의 아름다움과 지혜와 탁월성에 대한 열광으로 나아가게 하는 사랑이며, 그 사랑의 완전한 인간적인 형태는 단지 희미하고 불충분한 그림자일 뿐이다. 그러한 사랑이 보다 고차적인 삶에로의 출발인 동시에 덕과 철학과 종교의 원천이다(180).
인간의 탁월성은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간에 그리스 예술이 추구하는 바이다. 그 탁월성은 미학적인 동시에 윤리적이다. 그리고 무엇이 아름다운가를 묘사하는 것은 또한 무엇이 선한가를 묘사한다는 것을 포함한다(201~202).
그리스인의 경우에 조각과 회화는 미학적 쾌락의 수단일 뿐만 아니라, 국가 생활을 해석하고 표현하는 양식이기도 했다. 조각의 기본적 목적은 신화적 광경을 묘사하는 것이며, 각각의 경우에 순수한 미적 쾌락 또한 종교적 체험을 위한 것이었다. [...] 실제로 조각은 종교에 완전히 예속되어 있었으며, 종교를 통해 국가 생활에 예속된다(202~204).
한 마디로 예술은 윤리적 이상에 종속되었다. 아니 오히려 윤리적 이상과 미학적 이상이 분리되지 않았다(206).
‘음악’ - 좁은 의미로 무용과 서정시를 가리키기도 한다 - 은 그리스 교육의 중심이었으며, 따라서 음악의 도덕적 성격이 가장 중요한 문제로 되었다. [...] 도덕적 성품은 음악이 갖고 있는 감화력에 기인한다는 것, 이것은 그리스인이 일반적으로 윤리적 기준과 미적 기준을 동일시했다는 데 대한 유일하고도 가장 충격적인 설명일 것 같다. [...] 그리스인의 견해에서 성품은 영혼의 다양한 요소들이 구성되어 있는 비율이며, 올바른 성품은 영혼의 다양한 요소들이 올바른 비율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요소들의 상호 관계는 음악에 의해 직접적으로 영향 받는다. [음악과 도덕] 음악은 성격을 형성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206~207).
이미 지적했듯이 그들의 ‘음악’은 가락과 운문 및 무용의 긴밀한 결합이었으므로, 리듬과 선율이 간직하고 있는 특수한 인간적 의미는 언어와 몸짓을 수반함으로써 완전히 명료해진다(209).
언어에 의해 정신으로 전달되고, 선율에 의해 전달되는 감성적 성격은 이제 몸짓, 자세, 발동작에 의해 눈에까지 이르는 등 훨씬 잘 이해되었다. 이러한 표현의 세 양식이 결합하여, 그리스적 의미의 ‘미메시스’ 예술을 형성하였다. 따라서 음악과 마찬가지로 무용 역시 뚜렷한 윤리적 의미를 갖게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무용이 성격, 감정 및 행위를 모방한다”고 했다. 플라톤은 자신의 이상 국가론에서 무용을 음악과 함께 법률로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209~210).
그들[그리스인들]의 견해에 따르면, 윤리적 상태는 음악적 상태이다. 어떤 의미에서 덕이 영혼의 조화(harmonia)라는 것은 비유적인 것 이상의 그 무엇이다. 따라서 음악의 목적은 윤리적 목적과 일치한다. 가장 아름다운 음악은 동시에 도덕적으로 가장 훌륭한 음악이며, 또 도덕적으로 가장 훌륭한 음악은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다. [...] 덕과 아름다움은 동일한 실재의 두 측면이다. 즉 단 하나의 사실을 보는 두 가지 방식이다. [...] 선함과 아름다움은 하나이며 동일한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인이 품었던 이상의 전부이다(211~212).
실제로 시인들의 저술, 특히 호메로스의 저술은 그리스인과 우리 모두에게 도덕적 보고서이다. 오늘날은 추상적 용어로 도덕 수업을 받지만, 그들은 오히려 삶에 대한 구체적 묘사로부터 도덕 수업을 받았다(213).
스트라보, “당신은 먼저 훌륭한 인간이 되지 않으면, 훌륭한 시인도 되기 어렵다.”(214)
그리스 비극의 성격은 그것이 종교와 결부되어 있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결정되어 있었다. 비극이 공연된 기간은 디오니소스 축제 때였다(216).
아리스토텔레스. 참된 비극의 영웅은 천박하지 않은 본성을 타고나서 높은 지위를 차지한 인간이며, 죄를 범했을 때 자기 행위에 대한 벌을 받을 수 있는 인간이다(218).
모든 미적 효과는 윤리적 전제에 의해 제약된다. 그리고 이 전제를 파괴하는 것은 곧 비극의 참된 목적을 좌절시키는 것이다(218~219).
* 윤리 그리고 미적이라는 日本語가 현대 한국인들에게 일종의 착시 효과를 일으킨다. 이들 단어를 ethos(성격, 인격, 성품, 태도)를 연구하는 학문인 ethike 그리고 aisthesis로 바꾸어 생각해보라. 그리고 바로 이런 의미에서 오늘 일본인들에 의해 倫理學이라 번역되어 통용되고 있는 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용어는 차라리 性格學으로 번역되었어야 할 것이다 (마치 역시 아리스토텔레스의 용어인 physika가 物理學이 아니라 自然學으로 타당히 번역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보통 이른바 정치적 동물 혹은 사회적 동물이라 번역되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zoon politikon 역시 '폴리스(polis)적 동물'이라는 바로 그 의미이다. 인간의 본질, 성격은 폴리스 안에서만, 곧 그가 속한 폴리스의 종교적인 동시에 정치적/사회적인 활동 안에서만 성취가능한 것이다. 오늘날의 자연과 윤리와 사회와 정치와 종교가 이 고대의 그리스인들에게는 '아직 분리되지 않은' 전체로서의 하나였던 것이다.
그리스 비극은 성격보다 행위를 강조했다. [...] 그리스 연극의 주제는 보편적 인간이며, 근대 연극의 주제는 개인이다(220~221).
그리스 연극은 음악을 기초로 하기 때문에 오늘날의 오페라에 가깝다. 왜냐하면 그들의 연극은 서정시로부터 발전되었으며, 처음에 서정시의 유일한 요소였던 합창단의 무용과 노래를 온전히 보존하고 있었다. 율동적 동작과 풍부한 멜로디를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이야기의 부담이 덜어졌고 생동적 사실은 답가의 영역으로 분할되었기 때문에 구성의 명석하고도 엄밀한 의미는 절정에 달해서도 흐려지지 않았으며 가슴의 정열은 음악 속에서 자각되므로 이념은 서정적 운문으로 구체화되고 운문은 노래에 의해 이념화되었다. 노래와 운문은 온몸의 몸짓에 의해 거울 같은 눈에 반영되고 눈은 몸짓과 공감대를 형성한다. 연극의 행위를 연출하는 송시(頌詩)의 성격은 지금 말한 바와 같지만, 행위 그 자체는 정열과 지성보다 눈과 귀에 더 호소력이 있다. 공연의 환경 즉 개방된 분위기의 거대한 청중석은 낭송 등에 적합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연극 행위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배우는 보통 장화보다도 훨씬 긴 것을 신고 무대에 오르는데, 얼굴은 가면으로 가렸고, 목소리도 가성이다. 이것은 그 연극적 효과를 위해 배우들이 표정 연기, 목소리 혹은 빠른 몸짓의 섬세한 변화가 아니라, 자세의 균형 및 빠른 회화적 말투 때문에 운율이 흐트러질 수도 있는 장엄한 이암보스 시의 단조로운 억양에 의존하는 것이다. 따라서 공연은 눈에 대해서는 움직이는 조각이며, 귀에 대해서는 합창단이 부르는 격렬한 간주곡 사이에 있는 음악적 휴지부와 같은 것이다(222).
그리스 희극 역시 비극과 마찬가지로 노래와 무용이 기초이다(229).
전체 속에서만 부분이 실현된다. [...] 덕이라고 정의되는 성질은 오직 폴리스 속에서만 그 의의를 갖는다. 개인은 폴리스의 시민인 한에서만 완전한 한 인간이다(236).
그리스에 대한 이해 없이 니체를 이해한다는 것은 글자 그대로 어불성설이다.



2012. 7. 27.

헤겔 - 역사철학강의


       



* 프리드리히 헤겔, 『역사철학 강의』, 김종호 옮김, 삼성출판사, 1990.

“철학은 역사를 하나의 재료로서 다루고 역사를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고 그 사상에 적용시켜, 따라서 이른바 선천적으로(a priori) 역사를 구성하는 것으로 될 것이다.”(68)

“이 형식적인 절대적 진리와 더불어 우리들은 역사의 최후 단계에, 우리들의 [게르만] 세계에, 우리들의 시대에 도달한다.”(477)

“세계사는 자유 개념의 전개 외에 다른 아무 것도 아니다. [...] 철학은 다만 세계사 안에 반영되는 이념의 광휘만을 문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철학은 현실계 안의 직접적인, 미숙한 정열의 움직임에서 한 걸음 물러서서 그것을 고찰하는 것이다. 철학의 관심은 ‘자기를 실현하는 이념의 전개과정’, 그것도 자유의 의식이라는 형태에서만 나타나는 자유 이념의 전개과정을 인식하는데 있다.”(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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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철학강의> - G. W. F. 헤겔 / 권기철

<역사철학강의(세계사상전집 20)> - 헤겔 / 김종호

<역사철학강의(삼성세계사상 15)> - 헤겔 / 김종호

<헤겔의 역사 철학> - B.T.윌킨스 / 최병환

<헤겔 역사철학 강의> - 심옥숙

칸트 - 역사철학





<칸트의 역사철학> - 칸트 / 이한구



       
* 임마누엘 칸트, 「세계 시민적 관점에서 본 보편사의 이념」, 이한구 편역, 『칸트의 역사철학』, 서광사, 1992.

“역사는 이러한 현상들[인간 행위]을 설명하는 것이며, 그러한 현상들의 원인이 아무리 깊숙이 감추어져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역사에서 인간 의지의 자유가 발휘되는 과정을 긴 안목으로 고찰해 본다면 우리는 그 속에 어떤 규칙적인 진행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 있다.”(21~22)

제1명제. 생명체의 모든 자연적 소질은 언젠가는 완전하게, 그리고 목적에 맞게 발현되도록 결정되어 있다.”(25)

제9명제. 인류의 완전한 시민적 통합을 목표로 하고 있는 자연의 계획에 따라서 보편적 세계사를 편찬하려는 철학적 시도는 가능한 것으로서, 또 이런 자연의 의도에 공헌하는 것으로서 간주되어야만 한다.”(40)

* 임마누엘 칸트, 「헤르더의 인류 역사의 철학에 대한 이념들」, 이한구 편역, 『칸트의 역사철학』, 서광사, 1992.

“인류 일반의 목적은 끊임없는 진보이며, 이 목적의 완성은 간단하지만 모든 면에서 유용한 - 우리가 섭리의 목적에 맞게 우리의 노력을 경주하지 않으면 안 되는 - 목표에 관한 이념이다.”(73)

* 임마누엘 칸트, 「추측해 본 인류 역사의 기원」, 이한구 편역, 『칸트의 역사철학』, 서광사, 1992.

“완전성을 향한 진보로서의 인류의 운명”(83)

“우리는 중국의 경우만을 보아도 알 수 있는데, 중국은 그 지리적 위치로 인해 - 적어도 몇 번 예측하지 못한 외침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안 되었지만 - 강력한 적대국을 갖지 않았으므로 모든 자유를 상실해 버렸던 것이다. 인류가 현재 누리고 있는 수준의 문화에서도 전쟁은 그 인류 문화를 계속 진보하게 하기 위한 불가결한 수단이다.”(92)


* 임마누엘 칸트, 「만물의 종말」, 이한구 편역, 『칸트의 역사철학』, 서광사, 1992.

“원주 2) 항상 반계몽주의적 현인들(혹은 철학자들)은 선을 지향하는 인간성의 자연적 경향에 주의를 기울이는 일 없이 인류가 사는 이 세계를 완전히 경멸적으로 제시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적대적이고 부분적으로 혐오스러운 비유에 몰두해왔다. (1) 이 세상은 어떤 수도승이 바라보듯이, 여관(여인숙)이다. 그곳에서 인생이란 여행 동안에 그 곳에 머물렀던 모든 사람들은 다음 사람에 의해 곧 대체될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2) 이 세상은 교도소[감옥]이다. 이 견해는 바라문교, 티베트인 및 다른 동양의 현자들(심지어 플라톤까지도)이 강한 애착을 느꼈던 견해인데, 천상의 세계에서 추방되어 지금은 인간의 영혼이나 동물의 영혼이 타락한 정신의 징벌과 정화를 위한 장소가 곧 이 세상이라는 것이다. (3) 이 세상은 정신 병원이다. 이 곳에서 모든 사람은 그 자신의 목적을 스스로 파괴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온갖 종류의 깊은 슬픔을 야기시키며, 무엇보다 그의 기술과 힘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을 최고의 영예로 생각한다. (4) 마지막으로, 이 세상은 다른 세상으로부터의 모든 오물이 집결하는 똥구덩이이다. 이 마지막 평가가 어떤 의미에서는 원초적이다.”(100~101)

신비주의. [...] 이로 인해 최고선이란 허무 속에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즉 신성과의 융합을 통해, 따라서 자신의 개성을 파괴시킴에 의해 신성의 심연으로 몰입됨을 느끼는 의식 속에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노자(老子)의 괴이한 교의가 나타난다. 이러한 상태를 예감하기 위해 중국의 철학자들은 어두운 방에서 눈을 감고 허무를 명상하려고 한다. 이것으로부터 범신교(티베트와 동방의 여러 민족의)가 나타나고, 이 범신교의 승화에서 스피노자주의가 그 후에 나타난다. 이것들 모두는 인간의 영혼은 신성으로부터 나왔다는 (그리고 끝내는 신성 안으로 다시 함몰된다는) 고대의 유출설(Emanationssystem)과 자매 관계에 있다. 이것들 모두는 사람들이 결국 영원한 휴식-만물의 축복된 종말이라고 그들이 믿는-을 향유하기 위해서이다. 동시에 이런 관념이야말로 사실 사람들의 오성이 해체되고 모든 사유 자체가 종말을 고하는 관념인 것이다.”(106~107)

* 임마누엘 칸트, 「다시 제기된 문제: 인류는 더 나은 상태를 향해 계속해서 진보하고 있는가?」(칸트, 『학부간의 논쟁』 중 제2부 ‘철학부와 법률학부 간의 논쟁’), 이한구 편역, 『칸트의 역사철학』, 서광사, 1992.

인류가 (전체적으로) 더 나은 것을 향하여 끊임없이 진보하고 있는가라고 질문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은 인간에 관한 자연사(앞으로 새로운 인간 종족이 출현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가 아니라 도덕사(Sittengeschichte)가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때 인류라는 개념은 유개념(singulorum)에 따른 인류가 아니라, 지상에서 사회를 이루고 민족으로 나뉘어 살아가고 있는 인간 전체(universorum)로서의 인류를 의미한다.”(113~114)

“3. 우리가 미래에 관해서 미리 알고자 하는 것에 관한 개념의 분류

세 가지 경우를 우리는 예측할 수 있다. 즉 인류가 사악한 상태로 계속 퇴보하고 있거나, 도덕적 성향에 있어서 더 나은 상태로 끊임없이 진보하고 있거나, 혹은 피조물들 가운데에서 현재의 도덕적 단계에 영원히 정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정지 상태는 동일한 점의 주위를 궤도로 하여 영원한 회전 운동을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 우리는 첫 번째 주장을 도덕적 공포주의로, 두 번째 주장을 행복주의로 부를 수 있다. (이 두 번째 주장은 또한 진보의 목표를 멀리 있는 것으로 간주할 경우 천년기설(Chiliasmus)이라 할 수 잇을 것이다.) 그렇지만 세 번째 주장은 기계주의[아브라데주의]라 할 수 있다.”(116)

“인류는 항상 더 나은 것으로의 진보 과정에 있어왔으며 또 앞으로도 계속 진보해 나갈 것이다.”(126)


헤겔 - 역사 속의 이성

       





  * 프리드리히 헤겔, 『역사 속의 이성』, 임석진 옮김, 지식산업사, 1992.




“철학적 고찰은 우연적인 것을 떨쳐 버리는 것(das zufällige zu entfernen) 이외의 다른 어떤 의도도 갖고 있지 않다. 우연성이란 외적 필연성, 즉 그 자체가 한낱 외적 사정에 지나지 않는 원인에 귀착되는 필연성이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하나의 보편적 목적, 즉 세계의 궁극목적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지, 결코 주관적 정신이나 심정이 지닌 어떤 특수목적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서도 이때 우리는 그 궁극목적을 이성을 통하여(durch die Vernunft), 즉 그 어떤 특수한 한정된 목적이 아닌 오직 절대적 목적에만 스스로의 관심을 두고 있는 이성을 통하여 포착해야만 한다. 이 절대적 궁극목적은 자기 자신에 관한 증거를 제시하면서 동시에 이를 자체 내에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인간이 자기의 관심사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그 속에서 스스로의 지주(支柱)를 마련하고 있는 그러한 내용이다. 이성적인 것은 즉자 대자적 존재자로서 모든 것은 이것을 통하여 스스로의 가치를 지닌다. 이성적인 것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지만, 그러나 실로 정신 자체가 흔히 국민이라고 불리는 다양한 형태 속에서 개진(開陳)되고 현현(顯現)되는 데서처럼 이성의 명백한 목적이 드러나는 경우는 없다. 이제 우리는 역사에 대하여 의욕의 세계(die Welt des Wollens)는 결코 우연에 내맡겨져 있지 않다는 믿음과 사상을 안겨주어야만 한다. 모든 국민이 겪어나가는 사건 속에서는 궁극목적이 지배적인 것이며, 또한 이성이 세계사 속에 있다는 것(Vernunft in der Weltgeschichte ist)-그러나 어떤 특수한 주관의 이성이 아닌 신적이며 절대적인 이성(die göttliche, absolute Vernunft)-이 우리가 전제로 하는 진리이거니와 이 진리를 증명하는 것이 곧 세계사 자체의 논구이며, 다시 이 논구야말로 이성의 상(像)이며 행위인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이러한 본래적 증명은 바로 이성 그 자체의 인식(Erkenntnis der Vernunft selber) 속에 깃들어 있거니와, 이 이성은 오직 세계사 속에서 입증될 뿐이다(in der Weltgeschichte erweist sie sich nur). 세계사란 오직 이와 같은 성질의 이성이 현상화된 것이며, 또한 그 속에서 이성이 현현되는 특수한 형상 가운데 하나일뿐더러, 더 나아가서는 모든 국민이라고 하는 특수한 요소 속에서 표현되는 원형(原型)의 모상(模像)이다.”(50~51)










there's no philosophy without philology




 


문헌학, 어학 없는 철학, 학문이란 없다.
- 그 언어의 문법과 용례를 벗어나는 '해석'이란, 미안하게도, 그냥 '오역'이다.




* there's no philology without philosophy.

마찬가지로 철학 없는 어학과 문헌학도 어불성설이다.
- 철학이 없다는 것은 '자신'에게 당연하게 느껴지는 어떤 입장이 '정말' 당연한 줄 아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모른다
<논술과 철학 강의 2> - 김용옥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 - 김용옥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중용한글역주> - 김용옥



       
1-2. 도라는 것은 잠시라도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다. 도가 만약 떠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보이지 않는데서 계신戒愼하고, 들리지 않는데서 공구恐懼한다.


- 잠시라도 떠날 수 없는 도를 닦는다는 것은 남들이 보든 말든, 듣든 말든 나 홀로 항상 계신하며 두려움을 갖는 것을 말한다. 결국 '중용'이란 내 존재의 내면의 심화이다(240~241).

1-3. 숨은 것처럼 잘 드러나는 것이 없으며, 미세한 것처럼 잘 나타나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그 홀로 있을 때를 삼가한다.



- <<중용>>에서는 '숨은 것'과 '미세한 것'이 궁극적인 긍정적 가치로서 언급되고 있다. 숨음과 드러남, 미세함과 나타남이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통섭되는 것이다. 숨음처럼 잘 드러남이 없고, 미세함처럼 잘 나타남이 없다. 따라서 구태여 드러낼 필요가 없고 나타낼 필요가 없다. 숨어 있고, 미세한 곳에서 인간 본래 모습의 최대치를 발현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천명을 가장 바르게 드러내는 정도이다. [...] '은미隱微함'이 곧 '홀로있음愼獨'이다. 인간의 고독은 인간의 축복이다. 인간은 고독 속에서 성장하고 하늘을 발견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홀로 있을 때, 우주의 그 어느 누구도 나를 보고 있지 않을 때, 은미한 디테일이 다 수도修道의 대상이 될 때, 그때를 삼가해야 하는 것이다. 삼가함은 신중함이다. 삼가함은 자기 절제며, 자기 발견이며, 자기 주체의 심화과정이다. 그것은 쉼이 없이 전개되는 주체의 심화과정ever-deepening process이다. 겉으로 드러나고 나타나는 '나댐'의 과정이 아니라, 자기 주체의 내면으로 한없이 침잠하는 과정이다. 그것은 그 검은 바다 속 수 천 미터 아래로 잠수해 내려가는 잠수부의 고독 같은 것이다. 그것이 '신독'이다.


'신독' 사상은 <<주역>>의 대과大過 괘卦의 상전象傳에도 이런 말로 나타나고 있다: "군자는 위기의 상황에서 홀로 서도 두려움이 없으며, 세상을 등져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답답함이 없다." 그리고 <<대학>>에서는 '성의誠意'의 맥락에서 다시 언급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뜻을 성실하게 한다" 즉 마음의 지향성을 바르게 갖는다는 것은 곧 스스로의 감정을 기만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악취를 싫어하듯 악을 미워하고,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듯 선을 사랑하는 그 진정성을 보지保持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자겸自謙'이라 불렀다. <<대학>>에서는 일차적으로 "신기독愼其獨"의 의미를 "홀로 있을 때의 감정을 신중히 한다"는 뜻으로 풀었다. <<중용>>의 신독사상이 훨씬 더 포괄적인 존재론적 함의를 지니고 잇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신독'은 개인의 내면적 사태이므로 사회적 결과에 의하여 선악을 판단하는 일체의 공리주의적 윤리설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 주희장구 朱熹章句


'은'은 어두운 곳이다. '미'는 미세한 사건이다. '독'이라고 하는 것은 타인들은 알지 못하지만 자기만 홀로 아는 어떤 경지를 의미한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은, 그윽하고 어두운 가운데서 세미細微한 사건들이 그 형체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정태에서 동태로 바뀌어가는 그 미묘한 갈림길을 타인들은 알 수가 없지만, 나는 홀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즉, 천하의 사태가 현저하게 드러나고 명료하게 나타나는 것이 이보다 더함이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항상 계구하고 여기에 더욱 삼가함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욕人欲이 싹트려고 하는 것을 미리 막아서, 그것이 은미한 가운데 자라나서, 도로부터 멀어지는데 이르지 않도록 방비하는 것이다(242~246).

14-3. 윗자리에 있을 때는 아랫사람을 능멸하지 아니 하며, 아랫 자리에 있을 때는 윗사람을 끌어내리지 아니 한다. 오직 자기 자신을 바르게 할 뿐, 타인에게 나의 삶의 상황의 원인을 구하지 아니 하니 원망이 있을 수 없다. 위로는 하늘을 원망치 아니 하며, 아래로는 사람을 허물치 아니 한다.


- 윗자리, 아랫자리라는 외적 상황성을 극복하는 실존의 본질태는 '정기正己'이다. 즉 자신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 '정기'는 곧 나의 실존적 상황의 책임을 타인에게 구하지 않는 것이다. 곧 '불구어인不求於人'이다.


공자는 일찍이 말씀하시었다: "군자는 자기에게 구하고 소인은 남에게 구한다."(15-20). 이러한 논리를 구극적으로 밀고 들어가면, 타의 궁극은 곧 종교적 '타자'가 된다. 어떠한 경우에도 나의 존재의 책임이나, 실존적 상황의 원인을 나라는 존재 이외에서 구하지 않는 것, 이것이 <<중용>>의 심오한 논리이다.


[...]


공자나 [공자의 손자이자, <<중용>>의 저자인] 자사에게 있어서 두려움의 대상으로서의 원초적 '하늘天'의 개념은 분명히 남아있다. 그러나 인간의 도덕적 근원을 인격적 하느님이라는 존재자에게 구하지 않는다. 여기서 자사에게 새롭게 등장하는 종교적 개념은 '천지天地의 종교Tian-Ti Cosmos Religion'이다. 우선 이 천지의 종교에 있어서는 기존의 여하한 인격적 개념도 거부된다. '천명天命'의 '천天'은 이미 인격적 존재자가 아니며, 더더욱 신인동형神人同形적 투영일 수 없다. 인간의 종교적 감정은 특정한 '존재자'로부터 '천지'라는 대생명의 전체의 장으로 확대된다. 하느님이 근원적으로 탈존재화脫存在化되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그 전체의 장場의 축약태로서 마이크로코스모스적인 존재가 된다. 따라서 이러한 우주적 인간에게는 본질적으로 타자the Other라는 객체가 소실된다. 이것이 '정기불구어인正己不求於人'이라고 하는 의미의 본질이다. 그렇게 되면 인간에게 타자화된 욕망이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위로는 하늘을 원망치 아니 하고, 아래로는 사람을 허물치 아니 한다."는 자사의 사상은 '신독' 사상의 궁극적 귀결처라고 말할 수 있다. 기독교나 기타 여하한 신비주의도 이구동성으로 '절대적 타자Absolute Other'를 말한다. 그러나 자사는 나 존재로부터 모든 타자를 절대적으로 무화無化시킨다. 나의 존재의 책임은 천天이나 인人이나를 막론하고 모든 타자에게 전가의 기회를 단절하고 나 스스로 걺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중용>>이야말로 인간의 종교적 체험의 극상의 신비를 논구하고 있는 것이다(391~395).


* 22-1. 주희장구.



타인의 성性이든 사물의 성性이든 그것이 결국 다 나의 성性이다(542).


33-2.


"시詩는 말한다: "물고기 물에 잠겨 깊게 꼭꼭 숨어 있네. 그렇지만 물이 맑아 너무도 밝게 잘 보여라!" 이와 같이 내면을 숨길 길이 없으므로 군자는 안으로 살펴보아 부끄러움이 없어야 하고, 그 마음의 지향하는 바가 미움 살 일이 없어야 하는 것이다. 범인들이 미치지 못하는 군자의 훌륭한 점은 오로지 타인들이 보지 못하는 그 깊은 내면에 있는 것이로다!"


- 자사 논의의 핵심은 군자의 지적 통합판단이나 도적적 정직성은 결국 사회적인 승인으로써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자기 홀로의 내면적 판단에서 우러나오는 고독한 실존의 힘이어야 한다는 것이다."(629~630).


33-3.


"시詩는 말한다: "그대 방에 홀로 있을 따라도 하느님께 비는 제단 있는 저 구석에서 남이 안 본다고 부끄러운 짓을 하지는 말지어다." 그러므로 군자는 움직이어 자기를 뽐내지 않아도 사람들이 저절로 공경하고, 말을 하지 않고 침묵을 지켜도 사람들이 믿음을 준다."(630).




33-4


- <<순자>> <불구> 편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군자는 지극한 덕을 구현하기 때문에, 구태여 말을 하지 않아도 그의 심중을 모든 사람들이 헤아릴 줄 알고, 구태여 은혜를 베풀지 않아도 그에게 친밀하게 가까이 가려하며, 진노를 보이지 않아도 그의 위엄을 존중한다. 대저 사람들이 와 같이 그의 명을 따르는 이유는 그가 신독을 실천하기 때문이다."(633)



서유견문 - 유길준의 목소리





유길준, <서유견문(조선 지식인 유길준, 서양을 번역하다)
- (오래된 책방08)



       

"우리나라의 글자는 우리 선왕[세종]께서 창조하신 글자요, 한자는 중국과 함께 쓰는 글자이니, 나는 오히려 우리 글자만을 순수하게 쓰지 못한 것을 불만스럽게 생각한다."

- 유길준, <서문>, 26쪽.



"유길준이 1895년에 간행한 '서유견문'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한문혼용체 저서이자 최초의 서양 문물 계몽서라고 예전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배웠다. 그 뒤에도 책을 읽어볼 기회가 없었기에, 책 이름만 보고는 세계 일주 기행문 정도로만 생각하였다. 1993년 보스턴에서 안식년을 지내는 동안 '서유견문' 출간 100주년을 기념하면서 유길준이 머물렀던 집과 유학하였던 학교를 찾아다니다가, 국한문혼용 저술이니 한문으로 된 저술보다 쉬울 거라는 생각에서 이 책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책은 한글로 번역하는 작업이 한문으로 된 책보다 갑절은 더 힘들었다.


이 책을 처음 번역할 때 한문을 번역하는 것보다 더 어려웠던 이유는 문법이 다르다는 점에과 일본식 외래어가 많다는 점 때문이었다. 물론 당시의 독자들에게는 일본식 한자어 자체가 새롭고 낯설었겠지만, 일본식 한자어에 오랫동안 길들여진 우리 세대 독자들에겐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일본식 한자어가 어느새 우리말이 된 셈이다.


그는 자신의 새로운 문체가 당대 지식인들에게서 부정적인 반응을 얻게 되리라는 사실을 예측하고도 이 책을 국한문혼용체로 썼다. 한문을 모르는 국민들까지 읽게 하려면 국한문혼용체가 낫다고 여긴 것이다. '한글'을 '우리 글자'라고 한 것에서부터 사상의 전환을 엿볼 수 있다. 국한문혼용체는 에전에도 일부 시행되었지만, 그가 이 책을 국한문혼용체로 쓴 까닭은 나라마다 말과 글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이러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문법 교재와 정치학 교재를 함께 썼던 학자는 우리 역사에서 유길준밖에 없다. 계몽기라는 시대 상황 속에서 유길준은 이 두 가지 교재를 자신이 함께 써야겠다고 생각했으며, 국한문혼용체라는 문체를 시도하여 그러한 생각을 실천하였다. 국한문혼용이라는 국어 의식과 '득중 得中'이라는 정치 노선은 그에게 하나였기에 그러한 인식에서 '서유견문'을 읽어야 하겠다."

- 허경진, <글을 시작하기 전에>, 5~6쪽.


"일본사람 가운데 견문이 많고 학식이 넓은 사람과 더불어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그들의 의견을 듣고 새로 나온 기이한 책들을 보며 거듭 생각하는 동안, 그 사정을 살펴보고 실제 모습을 들여다보며 진상을 파헤쳐보니, 그들의 제도나 법규 가운데 서양[泰西]의 풍을 모방한 것이 십중팔구나 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17)



*** 




서유견문은 내가 상상하던 바와 전혀 다른 책이었다.

유길준은 1881년 신사유람단의 일원으로 일본에 가서 서양문물을 접한 최초의 일본 유학생이자, 1882년 미국에 외교 사절로 가서 유학생으로 남아 서양문물을 공부한 최초의 미국 유학생이다.

유길준은 1885년 유럽을 거쳐 귀국하면서 '서유견문'을 쓰기 시작하여 1890년 완성, 임오군란 등으로 출간하지 못하다가, 1884년 갑오경장을 거쳐 일본에 망명 그곳에서 다름 아닌 후쿠자와 유키치의 교순사에서 이 책을 간행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본격적인 국한문 혼용체로 적어내려간 이 탁월한 책은 그후 대한제국의 역사를 생각해볼 때 불행한 책이었다.

한글을 우리 글자(我文)라 칭하고, 진서를 한자(漢字)라 칭하는 이 민족주의의 선구적 저작은 당시인들에게는 오히려 읽기 어려웠을 일본식 조어인 신한어로 쓰여 있지만, 역설적으로 완벽히(자기가 그런 줄조차 모를만큼) '메이지화된' 오늘 우리에게는 아이러니하게도(?) 쉽게 읽힌다.

유길준의 글은 요즘에도 보기 드문 상식의 목소리, 건강한 시민의 양식을 가진 것이었다. 허경진의 번역 덕도 있겠지만, 원래 문체 자체가 좋았다.

일제병탄을 반대하고 작위와 은사금을 거부한 양심적 지식인이었지만, 그렇다고 독립운동에 나선 것도 아닌, 이 '개화기'의 지식인에게서 오늘 우리는 무엇을 읽어내야 하는 것일까?




구원, 그리스의 빛






<영혼의 자서전. 1> - 니코스 카잔차키스 / 안정효

       
"내가 벅찬 재앙이 닥치자마자 형언하기 힘든 비인간적 기쁨에 사로잡힌다는 사실을 나는 이때 처음 깨달았다. 숙모 칼리오페의 집이 홀랑 타버렸을 때 처음으로 불을 구경하던 나는 누가 목덜미를 잡아 집어던질 때까지 불 길 앞에서 깡충깡충 뛰며 춤을 추었다. 그리고 우리 선생이던 크라사키스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나는 웃지 않기 위해 애를 먹었다."(107)


"나는 언제가 나이 많은 이슬람 교도의 입을 통해 들었던 근엄한 격언이 머리에 떠올랐다. <만일 여자가 같이 자자고 부르는데 가지 않으면 너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신은 이것을 용서하지 않는다. 너는 지옥의 밑바닥에 유다와 자리를 같이 하리라.> 나는 이 말에 겁이 났다. 식은 땀을 흘리면서 나는 다친 짐승처럼 비틀거리며 집으로 걸음을 서둘렀다."(190)



"동양의 불안정하고 혼란한 함성은 그리스의 빛을 거치는 동안 점점 투명해지며 인간화하면서 로고스로, 이성으로 변형된다. 동양의 노예 근성을 자유로, 야만적 도취를 명석한 합리성으로 바꿔 놓는 여과기이다. 무형의 형태를, 측정이 불가능한 사물에 척도를 부여하며, 맹복적으로 맞서 싸우는 힘들에 균형을 잡아주는 사명은 세파에 시달린 그리스라는 바다와 땅의 힘에서 나온다.

그리스를 여행하면 참된 기쁨을, 위대한 풍요함을 얻는다. 그리스의 흙은 피와, 땀과, 눈물로 너무나 속속들이 젖었고, 그리스의 산들은 너무나 많은 인간의 투쟁을 보았기에, 여기 이 산과 해안에서 백인종의 그리고 모든 인류의 운명이 위기에 처했음을 생각해보면 나는 전율한다. 짐승에서 인간으로의 기적적인 변신이 이루어진 곳은 틀림없이 우아함과 흥겨움이 넘치는 이런 바닷가에서였으리라. 톱처럼 수많은 젖이 달린 아스타르테가 소아시아에서 닻을 내렸거, 야만적이고 조잡한 목상(木像)을 받은 그리스인들이 거기서 야수성을 씻어 내고 인간의 젖가슴만 남기고는 존귀한 인간의 육체를 부여한 곳은 그리스의 바닷가였으리라. 소아시아에서 그리스인들은 원시적인 본능과, 난장판을 즐겼으리라. 야수 같은 고함을, 아르타르테는 받았다. 그들은 본능을 사랑으로, 물어뜯는 입을 키스로, 술잔치를 종교적인 예식으로, 고함을 사랑의 속삭임으로 변모시켰다. 아스타르테를 그들은 아프로디테로 변형시켰다.


영적인, 그리고 또한 지리적인 그리스의 위치는 신비한 사명감과 책임감을 지닌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두 격류가 땅과 바다에서 충돌을 일으키기 때문에 그리스는 항상 지리적으로, 정신적으로 끊임없는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곳이다. 이러한 숙명적인 위치는 그리스의 운명과 전 세계의 운명에 기초적인 영향력을 미쳤다."(221~222)


"광기로 삶을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재난을 맞으리라."(280)



그림, 마음의 풍경






<내 이름은 빨강 2> - 오르한 파묵 / 이난아


"우리는 오랜 세월에 걸쳐 많은 책과 그림을 볼수록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깨닫게 되지. 훌륭한 화가는 자신의 그림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종국에 가서는 우리 마음 속의 풍경까지 바꿔놓는다는 것을 말이야. 어떤 화가의 예술작품이 이렇게 한번 우리 영혼 속에 자리잡으면 그것은 우리가 세상을 보는 아름다움의 잣대가 되고 말지."(279)


그림 자체가 이미 하나의 기억, 곧 마음의 풍경이다. 그리고, 글 또한 그러하다.

나 자신이 되는 것 - 불가능






<검은 책 2> - 오르한 파묵 / 이난아




"기차의 객차처럼 무정하게 서로를 쫓는 이 의미들을 생각하니 그 안에서 영원히 길을 잃을 것만 같아 두려워졌다."(47)


"처음에 그 책은 당시의 '이상주의자' 장교들이 썼던 '200년 동안 우리는 왜 서양을 따라 잡지 못하는가? 어떻게 하면 발전할 수 있는가?' 하는 식의 책처럼 보였다."(104)

"글을 읽는 것이 다른 사람의 기억을 서서히 취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겠는가?"(127)

"네가 너의 연인이며, 너의 연인이 너다. 아직 모르겠나?"(192)


"난 당신을 죽이겠소. 당신을 죽이겠소. 당신 때문에 한 번도 나 자신이 되지 못했소."
"사람은 절대 자기 자신이 될 수 없소."(218)

나 자신이 되는 것 - 환영




<검은 책 1> - 오르한 파묵 / 이난아

       
"그들은 [...] 우리의 기억을 해독하려 했고, 우리를 과거가 없고 역사가 없고 시간 밖에 존재하는 가련한 사람들로 만들려 했다."(182)


그녀는 부엌으로 왔다 갔다 하며 차와 구운 빵을 가져오면서, 잘 모르는 사람에 관해 즐겁게 이야기하듯이 편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 갔기에, 갈립은 그녀가 설명하는 것들을 불편하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남편이 죽을 때까지 이 병은 계속되었어. 어쩌면 지금도 계속된다고 할 수 있지.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병처럼 느껴지지 않아. 남편이 죽은 뒤 외로움과 후회의 나날을 보내며 깨달은 것이 있어. 사람이 자기 자신이 되는 길은 없다는 거야. 그때 나를 덮쳤던 깊은 후회는 똑 같은 병의 변형일 뿐이었어. 내 새로운 열망도 마찬가지엿지. 니하트와 함께한 삶을 되살리고 싶다는 열망말이야. 이런 후회가 남은 인생을 엉망으로 만들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어느 날 밤, 이상한 생각이 떠올랐어. 삶의 초반은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 나 자신이 되지 못했고, 중반은 나 자신이 되지 못한 그 세월을 후회하며 또 자기 자신이 아닌 사람으로 보낼 거라는 생각이었지. 이 생각이 얼마나 우습게 느껴졌던지, 웃음밖에 나지 않았어. 나의 과거, 나의 미래라 생각했던 공포와 불행이, 한순간 모든 사람과 나누고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은 운명으로 변해버리고 말았어. 그 누구도 자기 자신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전혀 의심 없이 확신하게 되었지. 버스 정거장에서 줄을 선 사람들 속에서 고민에 빠진 노인 역시 오래전에 자신이 열망했던 '실제' 인물들의 환영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 겨울날 아침, 햇볕을 쐬어 주려 아이를 공원으로 데리고 나간 그 건강한 어머니 역시 희생자임을, 또 다른 어머니 상의 복사본임을 알았어. 극장에서 멍하니 걸어 나오는 슬픈 사람들, 복잡한 거리에서, 시끄러운 찻집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불행한 사람들은 그들이 되고 싶어 하는 '진짜'의 환영들로 아침저녁 불안해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289~2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