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7. 28.

인간, 폴리스적 동물





<그리스인의 이상과 현실:서양철학의 뿌리> - G.L.디킨슨 / 박만준 외





모든 미적 효과는 윤리적 전제에 의해 제약된다. - 218


       
윤리, 그리고 미적이라는 日本語가 현대 한국인들에게 일종의 착시 효과를 일으킨다.
이는 이들 단어를 ethos(성격, 인격, 성품, 태도)를 연구하는 학문인 ethike 그리고 aisthesis로 바꾸어 생각해보라.
그리고 바로 이런 의미에서 오늘 일본인들에 의해 倫理學이라 번역되어 통용되고 있는 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용어는 차라리 性格學으로 번역되었어야 할 것이다 (마치 역시 아리스토텔레스의 용어인 physika가 物理學이 아니라 自然學으로 타당히 번역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보통 이른바 정치적 동물 혹은 사회적 동물이라 번역되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zoon politikon 역시 '폴리스(polis)적 동물'이라는 바로 그 의미이다.
인간의 본질, 성격은 폴리스 안에서만, 곧 그가 속한 폴리스의 종교적인 동시에 정치적/사회적인 활동 안에서만 성취가능한 것이다.
오늘날의 자연과 윤리와 사회와 정치와 종교가 이 고대의 그리스인들에게는 '아직 분리되지 않은' 전체로서의 하나였던 것이다.







       
* G. L. 디킨슨, 『그리스인의 이상과 현실: 서양철학의 뿌리』(1961), 박만준ㆍ이준호 옮김, 서광사, 1989.



그리스에는 교회나 교의(敎義), 그리고 지켜야 할 강령조차 없었다. [...] 사제들이 있기는 했지만, 그들은 단지 일정한 종교적 의식을 행하기 위해 임명된 관리에 불과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그리스에는 성직자와 속인의 구별이 없었다. 시와 교리의 구별도 없었다(13~14)
사람들은 종교를 가짐으로써 이 세계에서 편안해질 수 있었으며, 이것이 우리가 주목해야 할 첫 번째 사항이다. [...] 결국 신적인 것, 즉 그리스인의 말에 의하면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것’은 모두 맹목적인 운명의 성격을 갖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가진 사람은 접근할 수 있는 것이었다(16~17).
신들과 인간 사이에는 장벽이 없었다. [...]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에는 교회가 없었다는 사실 때문에 결코 국가가 승인하는 종교도 없었다고 잘못 이해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종교는 국가의 본질적인 것이었으며, 전반적이고도 세부적으로 국가의 전체 구조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었기 때문에 분리하여 생각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들이 사용하고 있는 말의 의미에 있어서의 교회, 즉 국가로부터 분리된 독립적인 조직으로서의 교ㅚ가 그리스에 없었던 까닭은, 어느 측면에서 국가 그 자체가 하나의 교회였으며 또한 국가는 부분적으로 혹은 전체적으로 자연 세계를 주재하고 있는 동일한 신들로부터 승인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그리스 종교가 정치적 생활의 정신적 측면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21~22).
그리스 종교는 논리적인 문장으로서가 아니라 종교 의식의 형태로 표현되었으며, 이런 점에서 기독교 신앙에서의 프로테스탄트보다는 로마 가톨릭에 더 가까운 것이다. [...] 불완전하게 전해져 내려오는 기록들과 우리의 견해로 추정해보면, 디오니소스 축제는 전형적인 그리스적 종교 축제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스인의 천재성. [...] 그리스 종교는 종교적 의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리스인의 독특한 성격이 고찰된 그 초기에 있어서는 그들의 내적 세계와 외적 세계를 분리시키 고찰하려는 의도는 잘못된 것이다(25~26).
그리스 신들은 그 형상 면에서는 본질적으로 인간과 같지만 인간보다 탁월한 존재인데, 그것은 정신적 혹은 무형적 속성에서가 아니라, 힘, 아름다움, 불멸성 등과 같은 외부로 나타나는 재능에서 탁월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그리스인과 신의 관계는 내면적ㆍ정신적인 것이 아니라 외면적ㆍ기계적인 것이었다(30).
인간과 신의 모든 관계는 일종의 계약과 같은 성격을 지닌 관계이다. “만약 너희들이 할 일을 다 한다면, 나도 그렇게 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나도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이 말은 한 쪽에만 통하는 것이 아니다. 이 의미는 도덕적이거나 정신적인 것이 아니라 법률적(계약적)인 것이다. 우리들이 말하는 종교적 의미의 죄나 양심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다(34).
외형적인 의식에 의해 치유될 수 있는 신체적 질병으로서의 죄의 개념(그리스)
오직 은총으로서만 멀리 쫓아낼 수 있는 양심에 대한 질병으로서의 죄의 개념(그리스도교) (37)
아이스퀼로스 비극의 주제는 바로 죄와 그 죄에 대한 벌로 일관한다. [...] 그의 주제는 참된 의미에서 죄를 지은 자의 도덕적 양심에 관한 것이 아니라, 지은 죄에 가해지는 객관적 결과에 대한 것이다. [...] 흔히 말하는 비극은 “피는 반드시 피를 부른다”는 외면적ㆍ객관적 법칙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며, 단지 그것이 전부이다. [...]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그리스적 관념은 내적이거나 영적인 것이 아니라 외적이며 기계적인 것이다(37~40).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에서] 무신론자는 필연적으로 반사회적ㆍ비도덕적일 수밖에 없다는 가정. [...] 이 시의 지은이[아리스테파네스]에 의하면, 이성에 대한 예찬은 사리사욕에 대한 예찬과 동일한 것이다. 그가 뜻하는 바는 곧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은 가족이나 국가도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71).
그리스의 국가 규모가 그 형성 과정에서 극히 우연적인 성격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그 규모가 무한정 확장될 수 있었으며, 그러면서도 국가의 본질적 성격은 유지될 수 있었으리라고 상상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그 국가의 규모는 바로 국가 개념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것이다(80).
오늘날 우리들이 말하는 ‘공적 생활’이란 [...] 완전한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고 불가결한 것이었다. [...] 국가의 이상과 개인의 이상은 결코 서로 모순되지 않으며 거의 구분조차 될 수 없었다. [...] 우리는 개인을 전체를 위해서 희생되는 존재로 간주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체 속에서(만) 스스로를 실현한다고 보아야 한다(82~84).
이[데모스테네스의 연설]와 같이, 보편적 원리인 법은 개인적 성향으로서의 본성과는 대립되는데, 이러한 대립 속에는 법과 정의는 동일하다는 묵시적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85).
고대 그리스 국가는 일차적으로 군사 조직되었으며 또 그렇게 존속되었다. [...] 사실 『국가』 전체를 통해 플라톤이 가장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상인 계급이 아닌 군인 계급이다. [...] 시민에 대한 귀족적 관념. [...] 그리고 우리가 덧붙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개인의 탁월한 능력에 대한 대체적인 그리스인의 관점이 바로 이러한 귀족적 관념과 결부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93).
우리는 스파르타에서 극단적으로 발전한 그리스 정치의 한 형태를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아마 그리스의 독자적인 정치 모형에 가장 근접한다고 볼 수 있겠다. [...] 무조건적인 국가 유지는 곧 개인이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목적이 되었다(109).
플라톤이 주장한 이상 국가는 대개 스파르타를 그 전형으로 삼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스파르타 정치 체제의 본질적인 결함은 군사적인 덕만을 배타적으로 고집한 것, 그리고 삶의 조화로운 측면을 지나치게 억압한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114).
아테네의 정치 체제는 마지막에 극단적인 민주주의로 끝나는데, 이것은 그리스 국가의 일반적인 정치 체제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118).
“간단히 말해 아테네는 헬라스의 학교이며, 고유의 인격을 갖춘 아테네인 한 사람 한 사람은 최고의 품위와 재능을 갖추고 자신을 다양한 형태의 현실에 적응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냥 하는 헛소리가 아니라 진리이며 사실이다.” - 투키디데스가 전하는 페리클레스의 연설(125)
우리는 그가[플라톤이] 가르친 주제가 바로 정의의 이념을 강한 자의 이해와 동일시하는 것으로부터 구출하는 것이었으며, 또한 정의의 이념을 만인의 보편적 이해로 재확인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129).
오늘날 우리가 덕(德, virtue)이라 옮기는 단어[arete, ἀρετή]는 탁월성(excellence)으로 옮겨져야 마땅하며, 또 그것은 영혼에 대한 의미만이 아니라 육체에 대한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 “아름다운 육신 안에 아름다운 영혼” [...] 그리스인에게 훌륭한 육체와 훌륭한 영혼의 상관관계는 필연적이다. 그들이 목표로 삼은 것은 균형과 조화였다. 육신에 영혼의 아름다움이 반영되지 않은 한 그들은 영혼의 아름다움을 거의 믿지 않았다(137~141).
중용. 델포이의 신전. “지나치면 쓸모 없다.” [...] 나쁘다고 여겨지는 것은 욕망 그 자체가 아니라 균형을 잃거나 그릇된 욕망의 방종이라는 것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분별 있는 사람’(êthos의 학, ethikē)이 “당연한 경우에 적정한 시간 동안 적절한 방식으로 상응하는 사람에게 화를 내는 것.” [절대적 법칙의 기계적 적용이 아닌, 각 개인의 상황에 따르는 유동적 작용 = 실천적 지혜 pronesis] 모든 삶은 그 삶을 사는 인간에 의해 구체화된 예술 작품이다. 그 작품의 질은 예술가 자신의 능력에 일치할 것이며, 모든 경우에 그 자신이 직접적으로 지각하는 것에 대체될 수 있는 일반적 규칙은 결코 없다. 선은 올바른 비례, 올바른 방식, 올바른 경우이다. 반면 악은 ‘옳음’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인간의 본성을 구성하는 요소들 그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니다. 그것들은 다만 선이나 악이 구체화될 수 있는 순수한 소재일 뿐이다. /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상은 전적으로 그리스적이다(147~148).
육체의 욕망과 영혼의 정념을 제어하는 이성이라는 마부. 그리스 최고의 금욕주의자 플라톤조차도 우선 그리스인이며 그 다음에야 비로소 금욕주의자인 것이다(149).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들의 관계는 연인의 관계인 동시에 친구의 관계였다(159).
우리가 아는 한, 고대 그리스에서 혼인과 관련된 연애는 거의 없거나 전무했다. 데모스테네스는 결혼은 아이를 낳기 위한 합법적 수단이라고 정의했다. [...] 우리는 [...] 아테네에서 혼인이 당사자의 관심과는 아무런 관계없이 오직 나이, 재산, 친분 관계 등에 따라 아버지에 의해 정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신이 혼인 제도를 명령했다는 크세노폰의 말(164~165).
그리스에서 우정은 하나의 제도라고도 할 수 있다(175). 테베군단. 플라톤에게 있어 사랑은 모든 지혜의 실마리이다. 그리고 모든 사랑의 형태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남성이 다른 사람에 대해 느끼는 사랑이고, 정신적 사랑이며, 또 특정한 육체와 영혼에 대한 정열로부터 최고의 아름다움과 지혜와 탁월성에 대한 열광으로 나아가게 하는 사랑이며, 그 사랑의 완전한 인간적인 형태는 단지 희미하고 불충분한 그림자일 뿐이다. 그러한 사랑이 보다 고차적인 삶에로의 출발인 동시에 덕과 철학과 종교의 원천이다(180).
인간의 탁월성은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간에 그리스 예술이 추구하는 바이다. 그 탁월성은 미학적인 동시에 윤리적이다. 그리고 무엇이 아름다운가를 묘사하는 것은 또한 무엇이 선한가를 묘사한다는 것을 포함한다(201~202).
그리스인의 경우에 조각과 회화는 미학적 쾌락의 수단일 뿐만 아니라, 국가 생활을 해석하고 표현하는 양식이기도 했다. 조각의 기본적 목적은 신화적 광경을 묘사하는 것이며, 각각의 경우에 순수한 미적 쾌락 또한 종교적 체험을 위한 것이었다. [...] 실제로 조각은 종교에 완전히 예속되어 있었으며, 종교를 통해 국가 생활에 예속된다(202~204).
한 마디로 예술은 윤리적 이상에 종속되었다. 아니 오히려 윤리적 이상과 미학적 이상이 분리되지 않았다(206).
‘음악’ - 좁은 의미로 무용과 서정시를 가리키기도 한다 - 은 그리스 교육의 중심이었으며, 따라서 음악의 도덕적 성격이 가장 중요한 문제로 되었다. [...] 도덕적 성품은 음악이 갖고 있는 감화력에 기인한다는 것, 이것은 그리스인이 일반적으로 윤리적 기준과 미적 기준을 동일시했다는 데 대한 유일하고도 가장 충격적인 설명일 것 같다. [...] 그리스인의 견해에서 성품은 영혼의 다양한 요소들이 구성되어 있는 비율이며, 올바른 성품은 영혼의 다양한 요소들이 올바른 비율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요소들의 상호 관계는 음악에 의해 직접적으로 영향 받는다. [음악과 도덕] 음악은 성격을 형성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206~207).
이미 지적했듯이 그들의 ‘음악’은 가락과 운문 및 무용의 긴밀한 결합이었으므로, 리듬과 선율이 간직하고 있는 특수한 인간적 의미는 언어와 몸짓을 수반함으로써 완전히 명료해진다(209).
언어에 의해 정신으로 전달되고, 선율에 의해 전달되는 감성적 성격은 이제 몸짓, 자세, 발동작에 의해 눈에까지 이르는 등 훨씬 잘 이해되었다. 이러한 표현의 세 양식이 결합하여, 그리스적 의미의 ‘미메시스’ 예술을 형성하였다. 따라서 음악과 마찬가지로 무용 역시 뚜렷한 윤리적 의미를 갖게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무용이 성격, 감정 및 행위를 모방한다”고 했다. 플라톤은 자신의 이상 국가론에서 무용을 음악과 함께 법률로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209~210).
그들[그리스인들]의 견해에 따르면, 윤리적 상태는 음악적 상태이다. 어떤 의미에서 덕이 영혼의 조화(harmonia)라는 것은 비유적인 것 이상의 그 무엇이다. 따라서 음악의 목적은 윤리적 목적과 일치한다. 가장 아름다운 음악은 동시에 도덕적으로 가장 훌륭한 음악이며, 또 도덕적으로 가장 훌륭한 음악은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다. [...] 덕과 아름다움은 동일한 실재의 두 측면이다. 즉 단 하나의 사실을 보는 두 가지 방식이다. [...] 선함과 아름다움은 하나이며 동일한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인이 품었던 이상의 전부이다(211~212).
실제로 시인들의 저술, 특히 호메로스의 저술은 그리스인과 우리 모두에게 도덕적 보고서이다. 오늘날은 추상적 용어로 도덕 수업을 받지만, 그들은 오히려 삶에 대한 구체적 묘사로부터 도덕 수업을 받았다(213).
스트라보, “당신은 먼저 훌륭한 인간이 되지 않으면, 훌륭한 시인도 되기 어렵다.”(214)
그리스 비극의 성격은 그것이 종교와 결부되어 있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결정되어 있었다. 비극이 공연된 기간은 디오니소스 축제 때였다(216).
아리스토텔레스. 참된 비극의 영웅은 천박하지 않은 본성을 타고나서 높은 지위를 차지한 인간이며, 죄를 범했을 때 자기 행위에 대한 벌을 받을 수 있는 인간이다(218).
모든 미적 효과는 윤리적 전제에 의해 제약된다. 그리고 이 전제를 파괴하는 것은 곧 비극의 참된 목적을 좌절시키는 것이다(218~219).
* 윤리 그리고 미적이라는 日本語가 현대 한국인들에게 일종의 착시 효과를 일으킨다. 이들 단어를 ethos(성격, 인격, 성품, 태도)를 연구하는 학문인 ethike 그리고 aisthesis로 바꾸어 생각해보라. 그리고 바로 이런 의미에서 오늘 일본인들에 의해 倫理學이라 번역되어 통용되고 있는 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용어는 차라리 性格學으로 번역되었어야 할 것이다 (마치 역시 아리스토텔레스의 용어인 physika가 物理學이 아니라 自然學으로 타당히 번역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보통 이른바 정치적 동물 혹은 사회적 동물이라 번역되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zoon politikon 역시 '폴리스(polis)적 동물'이라는 바로 그 의미이다. 인간의 본질, 성격은 폴리스 안에서만, 곧 그가 속한 폴리스의 종교적인 동시에 정치적/사회적인 활동 안에서만 성취가능한 것이다. 오늘날의 자연과 윤리와 사회와 정치와 종교가 이 고대의 그리스인들에게는 '아직 분리되지 않은' 전체로서의 하나였던 것이다.
그리스 비극은 성격보다 행위를 강조했다. [...] 그리스 연극의 주제는 보편적 인간이며, 근대 연극의 주제는 개인이다(220~221).
그리스 연극은 음악을 기초로 하기 때문에 오늘날의 오페라에 가깝다. 왜냐하면 그들의 연극은 서정시로부터 발전되었으며, 처음에 서정시의 유일한 요소였던 합창단의 무용과 노래를 온전히 보존하고 있었다. 율동적 동작과 풍부한 멜로디를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이야기의 부담이 덜어졌고 생동적 사실은 답가의 영역으로 분할되었기 때문에 구성의 명석하고도 엄밀한 의미는 절정에 달해서도 흐려지지 않았으며 가슴의 정열은 음악 속에서 자각되므로 이념은 서정적 운문으로 구체화되고 운문은 노래에 의해 이념화되었다. 노래와 운문은 온몸의 몸짓에 의해 거울 같은 눈에 반영되고 눈은 몸짓과 공감대를 형성한다. 연극의 행위를 연출하는 송시(頌詩)의 성격은 지금 말한 바와 같지만, 행위 그 자체는 정열과 지성보다 눈과 귀에 더 호소력이 있다. 공연의 환경 즉 개방된 분위기의 거대한 청중석은 낭송 등에 적합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연극 행위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배우는 보통 장화보다도 훨씬 긴 것을 신고 무대에 오르는데, 얼굴은 가면으로 가렸고, 목소리도 가성이다. 이것은 그 연극적 효과를 위해 배우들이 표정 연기, 목소리 혹은 빠른 몸짓의 섬세한 변화가 아니라, 자세의 균형 및 빠른 회화적 말투 때문에 운율이 흐트러질 수도 있는 장엄한 이암보스 시의 단조로운 억양에 의존하는 것이다. 따라서 공연은 눈에 대해서는 움직이는 조각이며, 귀에 대해서는 합창단이 부르는 격렬한 간주곡 사이에 있는 음악적 휴지부와 같은 것이다(222).
그리스 희극 역시 비극과 마찬가지로 노래와 무용이 기초이다(229).
전체 속에서만 부분이 실현된다. [...] 덕이라고 정의되는 성질은 오직 폴리스 속에서만 그 의의를 갖는다. 개인은 폴리스의 시민인 한에서만 완전한 한 인간이다(236).
그리스에 대한 이해 없이 니체를 이해한다는 것은 글자 그대로 어불성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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