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7. 27.

나 자신이 되는 것 - 환영




<검은 책 1> - 오르한 파묵 / 이난아

       
"그들은 [...] 우리의 기억을 해독하려 했고, 우리를 과거가 없고 역사가 없고 시간 밖에 존재하는 가련한 사람들로 만들려 했다."(182)


그녀는 부엌으로 왔다 갔다 하며 차와 구운 빵을 가져오면서, 잘 모르는 사람에 관해 즐겁게 이야기하듯이 편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 갔기에, 갈립은 그녀가 설명하는 것들을 불편하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남편이 죽을 때까지 이 병은 계속되었어. 어쩌면 지금도 계속된다고 할 수 있지.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병처럼 느껴지지 않아. 남편이 죽은 뒤 외로움과 후회의 나날을 보내며 깨달은 것이 있어. 사람이 자기 자신이 되는 길은 없다는 거야. 그때 나를 덮쳤던 깊은 후회는 똑 같은 병의 변형일 뿐이었어. 내 새로운 열망도 마찬가지엿지. 니하트와 함께한 삶을 되살리고 싶다는 열망말이야. 이런 후회가 남은 인생을 엉망으로 만들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어느 날 밤, 이상한 생각이 떠올랐어. 삶의 초반은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 나 자신이 되지 못했고, 중반은 나 자신이 되지 못한 그 세월을 후회하며 또 자기 자신이 아닌 사람으로 보낼 거라는 생각이었지. 이 생각이 얼마나 우습게 느껴졌던지, 웃음밖에 나지 않았어. 나의 과거, 나의 미래라 생각했던 공포와 불행이, 한순간 모든 사람과 나누고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은 운명으로 변해버리고 말았어. 그 누구도 자기 자신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전혀 의심 없이 확신하게 되었지. 버스 정거장에서 줄을 선 사람들 속에서 고민에 빠진 노인 역시 오래전에 자신이 열망했던 '실제' 인물들의 환영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 겨울날 아침, 햇볕을 쐬어 주려 아이를 공원으로 데리고 나간 그 건강한 어머니 역시 희생자임을, 또 다른 어머니 상의 복사본임을 알았어. 극장에서 멍하니 걸어 나오는 슬픈 사람들, 복잡한 거리에서, 시끄러운 찻집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불행한 사람들은 그들이 되고 싶어 하는 '진짜'의 환영들로 아침저녁 불안해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289~291)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