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7. 27.

새로운 인생







<새로운 인생(세계문학전집 134)> - 오르한 파묵

       


같은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다른 이들은 그와 같은 경험을 하지 못했다. -노발리스


"어느 날 한 권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나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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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무엇인가? 사고다! 인생은 무엇인가? 시간이다. 사고는 무엇인가? 그것은 인생, 새로운 인생이다! 지금껏 이런 것을 생각해 낸 사람이 없어다는 데 놀라워하며, 나는 이 단순한 논리에 굴복하여 버스 터미널로 가는 대신, 오 천사여, 곧장 사고 현장으로 가기로 결심했다."(84)

"진정한 해방은, 새로운 인생으로 가는 첫 출구는 교통사고를 통해 실현될 수 있다고 내게 말한 적이 있어. 맞아, 사고들은 출구야, 출구는 사고들이고 ...... 천사는 그 출구가 시작되는 순간의 마법 속에 있지. 그리고 그때 인생이라는 소용돌이의 진정한 의미가 우리 눈 앞에 나타나. 그때우리는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거야 ......"(108)

"행복으로 가득한 저택에서 나와 거리의 어둠 속으로 자겨 들어가면서 이 사람들은 서로의 마음을 절대 아프게 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더 이상 나 자신을 제어할 수가 없었다.

천사여, 두 개의 산 사이에 끼어 있는 아마시아에서, 한밤중에 진열장 앞에 선 채 나는 엉엉 울기 시작했어. 아이들에게 묻고 하잖아. 얘야, 왜 우니 하고. 사실은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울면서도, 아이는 물어 보는 아저씨에게 파란색 연필깍이를 잃어버려서 운다고 말하지. 으와 비슷한 슬픔이 진열장에 있는 물건들을 바라보던 나를 덮친 거야. 무심코 살인자가 되고 싶었을 때 내게 엄습했던 그 느낌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이제 나는 영혼 깊은 곳에서 이 무시무시한 고통을 느끼면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걸까? 건과 가게에서 해바라기 씨를 살 때, 아니면 나 자신을 비춰 볼 거울 몇 개를 식료품점에서 살펴볼 때, 아니면 냉장고와 난로들로 가득한 행복한 삶을 볼 때, 내 속에 있는 저주스럽고 사악한 목소리가 (봐, 이빨을 드러내는 비열한 검은 늑대를) 으르렁대면서 너는 유죄라고 외쳐댄다. 하지만, 천사여, 나도 한때는 인생을, 선행을 믿었어. 하지만 나는 지금 내가 믿을 수 없는 자난과, 내가 믿는다면 내가 곧 죽여 버려야 할 메흐메트 사이에 끼어서, 발터 권총과 행복한 삶에 관한 환상 이외에는 달리 매달릴 것이 아무것도 없어. 불신과 불안이 극단적으로 얽혀 잇는 계획에 바탕을 둔 오리무중의 상상 말이야. 내 마음 속에는 냉장고들, 오렌지 짜는 기계들, 월부로 판매하는 안락의자들의 이미지가 소리 없는 통곡을 반주로 해서 차례로 흘러 지나갔어."(264~265)

"왜 영화들은 호텔 방에서 비참함에 빠져 있는 슬픈 살인자의 고뇌를 우리에게 전혀 보여주지 않는단 말인가? 내가 영화감독이었다면 시트가 흐트러진 침대, 페인트 칠이 벗겨진 창틀, 더러운 커튼, 에비 살인자의 더럽고 구겨진 셔츠, 손을 넣었다 뺐다 하는 보라색 재킷의 호주머니 안, 침에 등을 굽히고 앉아 있는 모습, 시간을 보내기 위해 자위 행위를 하는지 등을 영화를 통해 보여주었을 것이다.

잠시 동안 머릿속으로 다음과 같은 문제들을 가지고 공개 토론을 하는 프로그램을 상상해 보았다. 왜 아름답고 감성적인 여자들은 인생을 망친 비참한 남자들과 사랑에 빠지는 것일까? 내가 살인자가 된다면, 그리고 그 흔적이 내 눈에 남는다면, 나는 비참한 남자의 모습으로 보일까? 아니면 괴뇌에 찬 남자의 모습으로 보일까? 자난은 진정으로 나를 사랑할까, 잠시 후에 내가 죽일 남자를 사랑했던 것의 절반만큼이라도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 나도 나히트-메흐메트-오스만처럼 평생을 철도원 르프크 아저씨의 책을 반복하여 노트에 베끼면서 보낼 수 있을까?"(293)

"예비 살인자는 예비 피살자에게, 한 사람의 죽음의 원인이 되었다는 사실이 자신에게 평생 동안 짊어질 무거운 짐인지 아닌지 물었다. 예비 피살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예비 살인자는 그의 눈에 나타난 슬픔을 보곤 자신의 미래를 두려워 했다."(300)

"돌아오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넘어서는 안 될 생사의 경계를 나는 방금 확실하게 넘어섰네. - 단테, <<새로운 인생>>, 제14장"(341)

"인생은 무엇인가? 시간이다! 시간은 무엇인가? 사고다! 그렇다면 사고는 무엇인가? 인생이다, 새로운 어떤 인생 ...... 나는 이렇게 반복하고 있었다."(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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